
애플 창업주인 고 스티브 잡스에 얽힌 두 가지 기억이 있다. 우선 2003년 잡스의 인터뷰다. 잡스는 태블릿PC 개발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이 자판(키보드)을 원하기 때문에 자판 없는 태블릿을 만들 계획이 없다”며 딱 잘라 부인했다. 하지만 잡스는 당시 아이폰보다 먼저 태블릿PC 아이패드를 개발하고 있었다. 이렇듯 그는 필요하다면 경쟁업체와 시장을 속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두 번째 인상적인 기억은 잡스가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을 고집했다는 얘기와 관련 있는 2010년 기자회견이다. 그는 당시 “큰 휴대폰은 팔리지 않을 것”이란 발언을 했지만 2003년 아이패드 개발을 부인한 것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매년 아이폰 화면을 조금씩 키웠다.
이를 문제삼아 삼성전자 필리핀법인은 애플이 5.5인치 아이폰6플러스를 발표한 9일 트위터에 잡스가 틀렸다는 식의 글을 올렸다. 더불어 인터넷에선 애플이 잡스의 발언과 다른 제품을 내놓았으니 잡스를 버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다.
그러나 아이폰 개발에 얽힌 일화를 되짚어 보면 과연 잡스가 작은 화면에 집착했는지, 애플이 아이폰6로 잡스와 결별했는 지 의구심이 든다. 잡스가 휴대폰을 만들 결심을 한 것은 2005년 MP3 음악재생기 아이팟 때문이었다.
잡스는 아이팟이 잘 팔리는데도 불구하고 “앞으로 휴대폰이 우리의 밥그릇을 빼앗을 것”이라며 걱정했다.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이 추가되며 시장을 잠식당한 디지털 카메라처럼 음악 재생 기능이 추가되면 아이팟도 똑같은 꼴을 당할 것이란 우려였다.
그래서 잡스는 휴대폰을 만들기로 하고 평소 조언을 자주 구한 제록스의 앨런 케이에게 어떤 휴대폰을 만들면 좋을 지 물었다. 앨런 케이의 대답은 명확했다. “5x8인치 화면으로 만들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5x8인치란 손이 큰 서양인이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크기다.
잡스는 그때부터 무조건 한 손에 쥘 수 있는 기기에 집착했다. 아이폰은 무조건 한 손으로 대충 집어도 떨어뜨리지 않도록 옆과 밑면을 둥글게 하도록 지시했다.
아이폰6에는 잡스의 이런 고집이 더 많이 보인다. 잡스가 고집한 금속과 유리 소재를 사용했고, 한 손으로 다룰 수 있는 기능이 더 많이 추가됐으며 아이폰3GS 시절의 둥근 모서리로 돌아갔다.
이것 말고도 잡스가 가장 집착했던 결정적 요소 또한 여전히 살아 있다. 바로 애플의 모든 제품을 관통하는 잡스의 핵심 철학인 '기기와 소프트웨어의 완벽한 결합'이다. 인문학과 과학의 결합을 중시한 잡스는 “인간을 이해하고 사용자를 배려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한 몸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잡스는 항상 운용체제(OS)와 서비스를 아이폰과 함께 발표했다. 이번에도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OS인 iOS8, 아이폰6를 위한 전자결제 서비스 애플페이 등을 함께 내놓았다.
그런데도 아이폰6에 혁신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의 휴대폰 사용 습관을 바꾸고, 모든 IT 기업들이 스마트폰에 달려 들도록 만든 아이폰의 등장 같은 혁신을 기대한다면 이 지적은 맞는 말이다. 다만 간과하는 것은 아이폰6 역시 잡스가 창조한 혁신의 연장선상에 있는 도구란 점이다. 애플은 끊임없이 혁신의 도구를 조금씩 개선하며 연마해 온 셈이다.
이런 틀을 바꾸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혁신을 원한다면 잡스가 맞고 틀린 것을 따지는 것은 의미 없다. 애플이 잡스를 버렸는 지 버리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들은 어항을 바꿔 달라는 물고기의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혁신이란 과연 무엇일까. 유명한 잡스의 2007년 신제품 발표 연설로 그 답을 대신한다. “가끔씩 모든 것을 바꿔 놓는 혁신 제품이 나온다. 우리는 오늘 이런 혁신제품 3가지를 소개한다. 첫째는 터치로 조작하는 커다란 화면의 아이팟, 둘째는 혁신적 휴대폰, 셋째는 완전히 새로운 인터넷 기기다. 뭔지 알겠는가. 3개의 기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친 기기다. 우린 그것을 아이폰이라 부른다.”
최연진 산업부 차장대우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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