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자 눈치·인사 불이익 우려 탓에 제도 생겨도 활용 못하는 현상 방지
獨 보쉬는 관리자의 체험 의무화… 부재 시 관리책임 나눌 방안 필요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의 A(45)차장은 2011년 11월 공공기관 최초로 시간제 근무 관리자가 됐다. 재단은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겠다는 A차장의 퇴사를 막고, 정부가 추진하는 유연근무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서둘러 시간제 근무를 편성해 시행했다. 그러나 A차장은 애초 신청한 시간제 근로기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4개월 만에 전일제 근무로 전환했다. A차장은“부하직원 관리 등 기존 직무는 그대로 둔 채 나의 출퇴근 시간만 조정했기 때문에 오전 9시에서 오후 1시로 정했던 근무시간은 오후 5~6시까지 늘어지기 일쑤였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재단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시간선택제 근무를 정착시켰고, 지금은 매년 2~3명의 직원들이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인사팀에서는 팀워크가 필요한 업무보다는 개인이 단독으로 감당할 수 있는 업무를 시간선택제 근무 직원에게 분담하고 업무량을 조절하고 있다. 인사팀의 직무개편 기술이 향상된 것이다.
A차장은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직무개편 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시간선택제 근로자의 근무 일정에 맞춰 회의 시간을 조율하는 등 조직 내 변화가 필요하다”며 “시간제 근무를 경험했기 때문에 앞으로 시간선택제 부하 직원을 둔다면 업무 지시부터 평가까지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직무개편 등 인사관리기술 발달과 같은 질적 변화와 함께 조직내 의사결정권자인 관리자의 시간선택제 근무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시간선택제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조직에 소속감을 느끼고 핵심인재로 성장할 수 있어야 제도 안착이 가능하다”며 “먼저 기업 경영자들과 고위관리자들이 시간선택제 근무를 체험하면서 그 효과를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리자가 새 제도를 경험하는 것은 육아휴직처럼 제도가 마련돼 있어도 상급자가 반대하거나 눈치를 주면 하급자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방지하고, 부하 직원들이 제도 선택시 승진누락 등 불이익을 우려하는 심리적 저항을 막는데 효과적이다. 때문에 독일의 자동차부품업체 보쉬는 시간선택제 도입시 관리자의 시간선택제 근무를 일정기간 의무화하기도 했다.
이상민 교수는 “국내 관리자들은 치밀한 계획 하에 일을 할당하는 게 아니라 즉흥적으로 업무를 던져주는 방식으로 일하기 때문에, 부하직원과 다른 시간대에 일하는 게 쉽지 않다”며 “시간선택제를 도입할 때 생산성 하락을 막으려면 관리자가 직접 경험하면서 어떤 방식이 해당 사업장에 맞는지 관리기술을 스스로 체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리직의 시간선택제 근무는 조직원만큼 간단하지는 않다. 근로시간, 업무 개편 외에도 관리책임을 동시에 줄여야 가능하다. 관리자 부재 시 업무를 대신할 담당자를 발굴하고, 동일한 업무능력을 쌓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올해 5월부터 스타벅스 주얼리시티점에서 시간선택제 부지점장으로 근무하는 오지혜(35)씨는 “비슷한 직종의 관리직은 시간선택제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2004년 스타벅스 바리스타로 시작해 2009년 지점장으로 승진한 오씨는 출산, 육아로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다 2013년 회사를 그만뒀다. 올해 5월 시간선택제 근로자로 재입사한 오씨는 평일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 20시간을 근무한다. 바리스타에게 커피 제조 기술과 경험으로 익힌 고객 응대 요령 등을 교육하고, 매장 내 사고 발생 시 대처하는 게 주 업무다.
오 부지점장은 “내 업무는 부재 시 지점장이 담당하고, 지점장도 없으면 중간관리자 격인 슈퍼바이저가 업무를 맡는다”며 “커피만 만드는 바리스타에서 슈퍼바이저로 승진하면 그때부터 지점장, 부지점장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는 훈련을 차례로 받으며, 다음 승진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오씨도 지점장 부재 시 매출관리, 근무표 조정 등 지점장의 업무를 대신 수행한다.
사무직 관리자가 시간선택제로 근무할 경우 동일한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자를 두 명 이상 두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다른 직종에 비해 업무 연속성이 필요한 만큼 두 관리자가 만나 업무를 인계하는 시간까지 계산해야 한다. 독일 자동차기업 벤츠는 시간제 관리자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전일제의 60% 시간 동안 일하는 두 명의 시간제 관리자를 채용하고, 업무 교대 시 관리자들끼리 만나 기존에 진행된 업무상황을 상의하도록 했다. 스위스의 라이파이젠 은행 역시 전일제 근로자의 60%를 일하는 두 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어 간부들의 시간제 근무를 독려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현실에서는 공공기관에서 먼저 시간선택제 근무 관리자를 도입해 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위직 공무원 승진 직전 1년 간 시간선택제로 근무하면서 고위직 업무교육을 받게 하거나, 임금피크제의 대안으로 은퇴 전 2,3년 간 시간선택제로 근무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김하나 인턴기자 (서울여대 국어국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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