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마다 바뀌는 한미동맹
비밀주의에 식언과 거짓말 다반사
꼼수 냄새 나는데 알 권리는 실종돼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비밀외교는 기본이었다. 남의 나라 땅을 가지고 강대국끼리 이리저리 재단하는 게 다반사였다. 약소국의 권리는 없었다. 강대국 귀족 엘리트들이 주도한 비밀외교가 국가 간 불화와 세계의 불안정, 전쟁으로 귀결되자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평화를 위협하는 비밀외교를 제어할 최소한의 장치가 유엔헌장에 마련됐다. 국가 간 모든 조약과 협정은 유엔사무국에 신속히 등록하고, 등록되지 않은 조약과 협정은 국제기구에서 원용(援用)할 수 없다는 조항이다.
한미관계, 특히 주한미군 문제에서 과거의 비밀주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국민을 졸(卒)로 보고 식언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행태가 그렇다. 좌ㆍ우파 정권을 가리지 않는 문제다. 최근 논의가 되고 있는 한미연합사단 창설, 한미연합사령부의 서울 잔류, 고고도 미사일방어무기 체계인 사드(THAAD)의 주한미군 배치 움직임은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주한미군 재배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맞닿는다. 대단히 중요한 안보 이슈이자 국익이 걸린 사안이지만 이를 다루는 방식에서 우리 정부의 역량이 취약하고, 한편으론 정직하지 못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주한미군의 평택기지 이전에 합의하면서 ‘원인제공자 부담’원칙에 따라 한국은 용산기지, 미국은 의정부에 주둔한 2사단 이전 비용을 각각 대기로 했다. 당시 국방부는 대략 절반씩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2사단 이전비용으로 전용(轉用)하는 것을 양해한 터라 실제는 우리가 거의 모든 이전비용을 댔다. 결국 이 문제는 정권이 바뀌고 난 다음에야 드러났다. 미국 기밀폭로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나온 한미 협의내용을 보면 노무현 정부의 부정직한 태도에 대한 미국측 불만이 표출돼 있다.
한강 이북 주둔이 유력한 한미연합사단 창설과 한미연합사령부의 서울 잔류 움직임은 주한미군 재배치 합의내용에서 벗어나 있다. 사실상 합의내용 변경이다. 평택으로 이전키로 했던 미 2사단 병력 일부와 사령관을 맡게 될 미군 측 지휘부가 한강 이북에 남아 사실상의 인계철선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부는 “남의 나라 군대를 왜 우리 인계철선으로 써야 하느냐”며 2사단의 평택기지 이전에 합의했다. 과거 정부의 생각이 짧았던 것인가. 그렇다면 기존의 2사단 이전 비용, 창설 연합사단의 기지 비용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설명도 들을 수 없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맞물려 노무현ㆍ이명박 정부는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한국형미사일방어시스템(KAMD)을 추진했다. 미국이 구축하는 미사일 방어체계(MD)에의 편입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을 아우르는 고고도 방어시스템은 없었으니 수긍이 갔다. 최근 미국은 주한미군에 북한 핵 미사일 대응을 이유로 사드를 배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로버트 워크 미 국방부 부장관은 지난달 방한해 “KAMD와 사드가 완벽하게 상호 운용성을 가지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게 실현되면 MD와 KAMD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MD 편입은 없다는 기존의 입장이 완전히 허물어지는데도 정부의 자세는 남의 일인 양 한다.
일각에서 전시작전권 환수 재연기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가 맞교환 된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이면 한심한 일이다. 미국의 요구에 국민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면서 정부가 식언을 반복하는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눈치, 중국의 눈치에 눌려 노골적으로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책의 연속성은 중요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면 신뢰성을 가질 수 없다. 혼란은 불가피하다. 물론 사정 변경, 환경의 변화에 맞춰 정책의 전환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책 전환에는 그에 합당한 명분과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나 안보정책은 더 그렇다. 지금 한미동맹과 관련한 제반 움직임은 그러한 설명이 부족하다. 오히려 꼼수의 냄새만 풍긴다. 반면에 국민의 알 권리는 실종돼 있다. 국민은 그냥 따라 오라는 것인가. 아니면 좌우 진영싸움의 벌집을 건드리기 싫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인가.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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