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방한 때 빵 공급한 대전 성심당 장시간 노동에 한때 이직률 64%
시간제 채용 하자 성과 늘고 안정… "시간제는 애사심 없다" 고정관념
단순히 채용만 늘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인사시스템 필요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대전의 빵집 성심당에서 만든 빵을 먹었다. 사과 타르트, 티라미수, 이탈리아식 치아바타, 깜파뉴(천연발효 호밀빵) 등을 구워 교황의 식탁에 올린 성심당은 1956년 문을 연 대표적인 향토기업이다. 동네 골목까지 점령한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의 열풍 속에서 꿋꿋이 명맥을 이어가는 몇 안되는 빵집이다.
성심당은 2010년 방송된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모델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탔고, 2011년 백화점 등에 입점하면서 전국적으로 매출이 급증했다. 매출액은 2011년 93억원에서 지난해 257억원으로 2배 이상 뛰었고, 직원 수도 같은 기간 137명에서 277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밀려들어오는 주문은 성심당에 고민거리도 안겨줬다. 직원들은 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지난해 이직률은 64%에 달했던 것이다. 성심당은 높은 이직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발전재단에 컨설팅을 의뢰했다. 그 결과 급여를 올리는 것보다 직원들의 노동 시간을 감축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견을 제시받았다. 주말에도 일해야 하고, 주문이 폭주할 경우 노동강도가 높은 제과점 업무의 특성 때문에 직원들이 근로시간 단축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시간제 아르바이트는 애사심이 낮다”는 이유로 전일제 정규직 직원 채용을 고수했던 성심당은 결국 올해 5월 고심 끝에 정규직 시간선택제 근로자 20명을 채용했다. 그 결과 주 60시간에 달했던 전일제 근로자의 근무 시간은 주 52시간으로 줄었고, 이직률도 25%로 크게 감소했다. 성심당을 운영하는 로쏘㈜의 윤재원 인사과장은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은 정시 퇴근을 하기 위해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고, 전일제 직원들도 빨라진 작업 속도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과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성심당을 컨설팅한 이현실 노사발전재단 시간선택제TF 책임컨설턴트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경우, 시간당 생산성이 올라가면서 장시간 근로가 개선되고, 직원만족도가 높아져 이직률이 낮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시간선택제 근로가 생산성을 높이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효과가 있지만, 문제는 시간선택제를 도입하려는 기업들은 서비스직이나 인력난에 시달리는 제조업 등 일부직종에만 편중돼 있는 점이다.
정부는 시간선택제로 직무 개편을 하기 쉬운 업종을 모델로 삼아 우수사례집을 펴내고 있지만 병원, 콜센터 등 이미 교대제 근무가 일반화된 직종이 대부분이다. 반면, 사무직 등 업무 연속성이 요구되는 직종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모델로는 제시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시간선택제는 다양한 근무형태 가운데 하나인데도 정부가 적합 직종을 선정하면 그 직종은 시간선택제만 가능한 일자리로 오인하게 된다”며 “노사 모두 시간선택제를 정규직, 비정규직에 이은 새로운 고용 형태로 인식하기 때문에 오히려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간선택제를 재택근무제, 시차출퇴근제와 같은 새로운 근무형태로 인식시켜 정착하도록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조언한다. 시간선택제 인력의 신규 채용 뿐만 아니라 기존 전일제 근로자들도 시간제 근무 전환이 가능하도록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직종ㆍ업무별로 수행 시간과 성과를 체계적으로 평가해 관리하는 인사 시스템이 필요하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이 여러 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각 근로자의 일정을 퍼즐 맞추듯 짜임새 있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별로 업무를 세분화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인사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 시간선택제 근로자의 채용만 늘릴 경우 오히려 비용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양적 확대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기업 인사 시스템의 혁신을 독려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배규식 선임연구위원은 “전일제 근로자가 기업에 시간제 근무를 요청하는 시간제 전환권, 시간선택제 입사자가 전일제 근무를 요청하는 전일제 전환권 등을 제도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사시스템만 정비되면 사무직에도 시간선택제 도입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도 올해 3월부터 주 3일 근무하는 시간선택제를 도입해 연구원들의 프로젝트 숫자를 줄였다.
시간선택제를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배규식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기 보다 노사정 협의를 거쳐 시범사업을 한 뒤 문제점을 찾아내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등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기업도 시간선택제 근로자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거라는 고정관념부터 깨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김하나 인턴기자 (서울여대 국어국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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