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평창에 그리움을 찾아가는 여행지가 또 하나 생겼다. 대관령 하늘목장이 조성된 지 40년 만에 지난 1일 일반에 개방했다. 목장이라고 넓은 초지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랫동안 외부의 발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고산지대 나무와 야생화가 자연스럽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너른풍경길’ ‘가장자리숲길’ ‘종종걸음길’ ‘숲속여울길’등 4개 산책로 이름만 봐도 초지와 숲·계곡이 공존하고 있다는 걸 연상할 수 있다.
목동이 걷던 산책길 따라 하늘목장으로
‘가장자리길’입구에는 이 목장의 역사를 증명하듯 목장 개척비와 10주년 기념탑 등이 정원처럼 꾸며져 있다. “한반도 등허리 이 곳 대관령은 잡목 우거지고 바위덩이 나뒹구는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황무지를 개간 이용하겠다는 일념으로 첫 삽을 든 지 어언 10년, 땅 파고 나무 베던 그날의 결의는 저 넓은 초원에 스며들어 풍요한 미래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하늘목장 10주년 기념탑에 새겨진 문구에서 이곳의 원래 모습을 짐작할 만 하다. 마가목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 오른편 계곡엔 이름없는 폭포가 감춰진 보물인 듯 하얀 물줄기를 쏟아낸다. 약 1.5km에 달하는 이 길 왼편은 소들이 풀을 뜯는 방목지고 오른편은 자연 그대로의 숲이다. 산책로 중간쯤의 초지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촬영지다. 초지에서 미끄럼을 타거나, 멧돼지와 쫓고 쫓기는 장면 등 넓은 초원이 등장하는 장면은 대부분 이 곳에서 찍었다. 길은 평화로운 목장 풍경을 감상하며 완만하게 능선까지 이어진다.
‘숲속여울길’은 나무가 마치 터널처럼 우거진 힐링 숲길이다. 대관령 고지에서는 흔치 않은 모습이다. ‘종종걸음길’은 과거 목동들이 급히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이용했던 지름길이다. 이 길도 좌우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 야생화나 희귀 나방 등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다.
선자령 정상으로 이어지는 서늘한 초록 능선
대관령 하늘목장의 가장 큰 이점은 선자령 정상까지 가장 쉽게 닿을 수 있다는 점이다.‘너른풍경길’은 능선에서 선자령에 이르는 약 2km의 산책로다. 하늘과 맞닿은 초지 사이로 난 길을 걷다 보면 자갈길과 숲길이 이어지고 선자령 바로 아래서 또 다시 너른 초지와 만난다. 일명 ‘별맞이 언덕’이다. 이 곳에서는 눈으로만 보던 초지에 직접 들어가 폭신한 초록의 기운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바람 따라 스러진 풀 결 아래로 목장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횡계 시내와 올림픽 스키점프대까지 전망이 시원하다. 선자령에선 반대편으로 강릉과 동해바다까지 볼 수 있지만 날씨가 변수다. 하늘목장을 방문한 날, 능선 아래는 더없이 맑았지만 정상에선 끝내 파란 하늘을 보지 못했다. 대관령 능선을 넘는 구름이 동해에서 끝없이 올라와 코앞에 있는 대형 풍력발전기의 꼭대기까지 가렸다. 좋은 날씨라도 간단한 바람막이나 비옷을 챙겨오는 것이 좋겠다. 대형 풍력발전기(하늘목장에 29기, 삼양목장에 20기가 있다)는 대관령 목장의 또 다른 풍경이다. 날개 하나가 승용차 14대를 세워 놓은 크기이니 자칫 흉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거대한 괴물도 대관령 목장의 너른 품에선 밋밋한 풍경에 포인트를 더하는 소품일 뿐이다.
하늘목장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이고, 그 다음이 트랙터 마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목장입구에서 32인승 트랙터 마차를 타면 20분만에 ‘너른풍경길’이 시작되는 하늘마루 전망대까지 닿을 수 있다.
승마를 즐기는 이들에겐 하늘목장 2단지 코스가 제격이다. 이곳은 외승(야외에서 말을 타는 것)체험으로만 갈 수 있다. 약 2시간 동안 드넓은 초지와 능선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 안전담당자가 동행하지만 어느 정도 말을 탈 수 있어야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사전예약이 필수다.
9월 한달 간은 입장료(대인 5,000원/소인 4,000원)가 무료다. 이국적인 풍경 속에 묻어오는 서늘한 가을바람이 그립다면 대관령 하늘목장으로 가자.
평창=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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