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원하는 관광객들 몰리면서 명동·광화문 교통마비 주범으로
"업계에만 부담 지울 게 아니라 국가도 나서서 대안 마련 나서야"
서울 명동의 롯데백화점 명동점 앞 도로는 매일 오후면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숭례문 방향으로 줄지어 선 버스가 편도 4개 차로 중 2개를 점령하기 때문이다. 교통관리요원이 호각을 불어대며 교통정리를 해도 1~2분에 한 대 꼴로 들어와 중국인 관광객들을 쏟아내는 45인승 관광버스들을 관리하기는 역부족이다. 나머지 두 개 차로로 시내버스, 택시, 승용차 등이 몰리면 인근 도로 100여m는 사실상 마비상태가 된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이 300만명을 넘는 등 이른바 요우커(遊客) 특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외국인 관광객이 선호하는 서울 중심부 백화점 면세점 등에 관광버스들이 몰리면서 인근 도로들이 극심한 정체 현상을 겪고 있다. 올해 1~8월 명동 일대 불법 주ㆍ정차 관광버스 단속 건수는 1,243건으로 월 평균 155건에 달했다.
하지만 해당 업체들은 늘어나는 관광객은 환영하면서도 이들이 타고 온 버스 주차공간을 마련하는 일은 뒷전에 두는 모습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롯데백화점 명동점을 찾는 여행사 버스는 일 평균 200여대, 주말에는 500대를 넘는다. 이에 따라 백화점 옥외 지상 3층 주차장을 버스 전용으로 변경했지만 겨우 30여대만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 별 효과가 없다.
지난달 말 본보 기자가 오후 1시 반부터 6시 반까지 이 일대에서 자원봉사 중인 남대문경찰서 모범운전자연합회 소속 교통관리요원 6명의 차량통제 현장을 관찰한 결과, 오후 혼잡 시간대 정체는 불가피해 보였다. 교통관리요원들이 관광객이 내린 버스를 곧바로 이동시키고 관광객을 태우러 온 버스를 차례로 정차시키는 식으로 주차 관리를 했으나 밀려드는 버스가 훨씬 많았다. 교통관리요원 김홍기(75)씨는 “가장 많이 몰릴 때는 1시간에 관광버스가 50여대나 들어와 교통정체가 극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기사들은 1시간 넘게 도로변에 주차를 하기도 했다. 기자가 사진을 찍자 기사들은 단속을 의식한 듯 차량을 몇 미터 전진시킨 후 다시 차를 댔다. K여행사 소속 기사는 “관광객을 내려주고 차를 빼야 하지만 시내를 도는 기름값도 만만찮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롯데백화점이 내놓은 대책이라곤 지난해 7월부터 관광버스 기사들에게 상품권(1만원)을 나눠주며 “시내를 빙빙 도세요”라고 부탁하는 것밖에 없다. 백화점 관계자는 “지난해 5월부터 중국인 관광객이 급격히 늘었지만 이를 수용할 주차공간이 생기지 않는 한 교통정체는 계속될 문제”라고 책임을 미뤘다.
인근 신세계백화점 명동점 앞 도로도 관광버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 24일 오후 3시쯤에는 관광버스 6대가 아예 한국은행과 신세계백화점 사이 도로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백화점은 그나마 교통관리요원이나 관광버스 전용주차장조차 없다. 백화점 관계자는 “예약한 관광객의 경우 따로 빌린 다른 주차장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약 없이 백화점을 찾는 관광객이 더 많아 도로 정체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동화면세점도 5일 오후 면세점과 세종로파출소 사이 도로에 관광버스 7대의 불법 정차를 방치했다. 이곳 역시 기사들에게 1만원짜리 상품권을 주고 “경복궁 근처를 돌다 오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면세점 관계자는 “주차장 확보가 어렵다. 외지 주차장에 버스를 보내봤더니 하루 주차비가 150만원에 달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교통정체를 유발하는 백화점 등이 공동으로 버스주차장을 확보하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교통정체 해결과 해외 관광객 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백화점 측이 일정 부분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승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고궁 등의 지하에 버스 전용 주차장을 확보하도록 하고 업계에만 부담을 지울 게 아니라 국가도 나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체증을 피하면서도 접근성이 좋은 곳에 관광버스 승하차장을 별도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손현성기자 hshs@hk.co.kr
한형직기자 hj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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