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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 울려퍼진 자진모리... 한국적 미사곡 어깨춤 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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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 울려퍼진 자진모리... 한국적 미사곡 어깨춤 덩실

입력
2014.09.0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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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안 성가부터 현대곡까지... 서구 음악 중심의 의례 양식 속에 징 등 토속 악기들 전면에 내세워

들판서 노동요 부르듯 매기고 받아... 장르 넘어선 한국적 시도로 반향

성공회 서울주교좌 교회 본당은 전문 연주장이 아니기 때문에 공연 무대로는 부족하지만 잔향감 등 거부하기 힘든 마력도 있다. 성악 앙상블 보체 디 아니마가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성공회 서울주교좌 교회 본당은 전문 연주장이 아니기 때문에 공연 무대로는 부족하지만 잔향감 등 거부하기 힘든 마력도 있다. 성악 앙상블 보체 디 아니마가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합창단이 일시에 소리를 내질렀다 급격히 끝내자 잔향감 좋은 덕수궁 옆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교회 본당의 높다란 돔에 메아리의 묶음이 감돌았다. 풍성한 잔향감은 종교 음악 특유의 경건함을 배가했다. 성부가 전혀 나눠지지 않는 제창(unison)이 전문 성악인들의 입에서 나왔다. 성악 앙상블 보체 디 아니마(영혼의 소리)의 제12회 정기연주회 ‘그때부터 지금까지’가 4일 오후 7시30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회성당 본관에서 열렸다.

이날 연주의 감흥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색달랐던 것만은 아니다. 서구적 의례 양식 깊숙이 스며든 한국 전통이 새삼 확인된 자리였기 때문이다. 남성 6명, 여성 7명으로 이뤄진 합창단은 그레고리안 성가, 르네상스 성가, 현대 한국의 제의곡 등으로 흔치 않은 감동을 선사했다. 한편에 자리잡은 장구와 징이 서양 음악 형식의 가운데로 들어와 한몫 단단히 하고 있었다.

때로는 완전 덩더꿍 장단이었다. 이건용의 ‘아시아 미사’는 교회에 스며든 한국의 음악적 결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청승맞은 ‘미제레레’, 흥겹기까지 한 ‘상투스’ 등 서양의 전례에 한과 흥이 개입하고 있었다. 팀파니나 북과는 분명히 다른 질감이다. 꺾는 농현음 등 국악적 시김새, 두 세 성부로 나뉜 합창단의 매기고 받는 노래는 영락없는 우리 들판의 노동요였다. 지휘자의 손동작마저 신명에 겨운 듯 보였지만 합창단을 세밀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토속 음악을 미사 음악 속에 끌어안은 ‘미사 루바’나 남미의 색채가 짙게 가미된 ‘미사 크리올라’ 등 서구 음악을 내면화해 온 굵은 흐름의 한국적 시도였다. 징이 풍성한 여음으로 문을 연 ‘키리에(자비를 베푸소서)’에서 여성 합창단은 유장한 제창으로 화답했다. ‘글로리아(영광)’ 대목에서는 장구와 꽹과리의 소리가 자진모리로 숨 가빴다. 지휘자 홍준철(56)씨가 리허설 때 “너무 빠르게 말고 넉넉하게”라고 주문했던 부분이다. 가수들이 자리를 바꿔 가며 최상의 배치를 찾아내는 등 순발력 있는 운용은 객석의 감동으로 이어졌다.

이 성악 앙상블은 바로크 음악과 현대 음악을 주요 레퍼토리로 하는 전문 연주단이다. 일견 대극에 서는 두 음악의 접점을 통해 현재의 음악을 만들어 내려는 작업과 동시에 한국 창작 음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 팀에서 4년째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강종희(36)씨는 “우리 가곡이나 성가곡의 편곡 연주 작업 등 잊혀져 가는 종교 음악이나 고음악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겠다”며 “한국적 리듬감 등 본능적으로 끌리는 한국적 정서를 노래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휘자 홍씨는 “고딕 양식과 달리 소리의 울림이 풍성한 정통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의 장점을 살리는 데에도 주안점을 둔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무대에 만족을 표하고 “앞으로 이곳이 정통 클래식만 국한하지 말고 오페라나 뮤지컬 등 장르를 넓혀 다양한 관객과 만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2부에서 오르간으로 반주한 피아니스트 김민주(34)씨는 “그레고리안 성가 등 외국 교회에서도 낯선 레퍼토리를 올리는 이 성악단의 진지한 지세가 좋아, 기회가 닿으면 계속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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