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 남성 A는 두 차례의 이혼 끝에 혼자 산다. 청년기에 여읜 아버지 제사나 차례를 앞두고는 제수 장만과 음식 준비에 꼬박 이틀을 매달린다.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리고, 혼자서 잔을 올리고, 혼자서 절하고, 혼자서 뒷정리를 한다. 오래 전에 사이가 멀어진 어머니와 누이 동생은 제삿날이나 명절에도 들르지 않는다. 육체적 피로도 무겁지만, 외로움이 더욱 그를 짓누른다. 명절은 그에게 외로움이고, 가족들이 왁자지껄하게 모여 떠드는 모습만 그립게 한다.
▦ 40대 후반 남성 B는 위로 형이 둘이나 있는데도 홀어머니를 모시고, 제사와 차례도 맡았다. 두 형은 처음 형수들의 고부갈등과 종교를 이유로 조카들만 데리고 동생 집을 찾더니,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제사나 차례에 참석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극심할 부인을 달래려고 그는 제사나 차례 때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열심히 집안일을 거든다. 요리는 불감당이지만 설거지나 청소는 늘 그의 몫이다. 그런 정성이 통했는지, 부인은 이제 명절 때가 되면 시아주버니와 동서들은 몰라도 조카들이라도 불러서 놀다 가게 하라고 채근한다.
▦ 50대 후반 남성 C는 10여 년 전부터 명절 때면 형과 함께 팔을 걷는다. 집안 청소나 차례 음식 준비는 물론이고, 설거지까지 한다. 장성한 아들과 조카 등 집안 남자들 모두와 함께다. 연로한 부모님들은 아들손자들의 이런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평소 살림하느라 고생한 며느리들이 편안히 쉬며 수다를 떠는 모습이 오히려 흐뭇할 지경이다. 남자들은 부엌일이 귀찮기는 해도 힘들 정도는 아니다. 그에게 명절은 가족의 유대를 키우는 시간이다.
▦‘명절 증후군’ 이야기가 많이 뜸해졌다. 같은 이야기라서 너무 진부해진 때문인지,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행동 변화가 며느리들의 스트레스를 줄인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며느리들의 가정 내 지위가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거꾸로 지위의 상대적 하락을 겼었지만, 아직 아들들의 비명은 들리지 않는다. 남녀 간 속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정이란 둥지를 떠나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더 외롭고 약해서일 수도 있다. 온갖 애간장을 끓이면서도 무사히 추석 연휴를 넘기려고 침묵하는 남자들에 화이팅!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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