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부에서 5개월 간 치열한 교전을 벌여 온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 러시아 반군이 휴전에 합의했다. 서방국가들의 제재 압박공세에 러시아가 전략적 후퇴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러시아군 철수를 요구하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분리독립 의지를 꺾지 않는 친러 반군의 입장 차가 여전히 팽팽해 휴전합의가 항구적 평화 정착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 친러 반군, 러시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은 5일(현지시간) 오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열린 다자회담에서 휴전 의정서에 서명했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민스크에서 휴전협정 체결을 위한 의정서가 체결됐다”면서 “이 의정서는 5일부터 발효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군에게 이날 오후 6시부터 교전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크라이나 분리주의자들이 자체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도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이 같은 합의 사실을 확인했다. 협상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의정서에는 휴전 감시, 포로 교환 등의 문제를 포함한 14개 항의 합의가 포함됐다”고 전했다.
이날 회의에는 우크라이나 측에서 레오니트 쿠치마 전 대통령, 러시아 측에선 미하일 주라보프 키예프 주재 러시아 대사, 유럽 측에선 하이디 탈리야비니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우크라이나 문제 담당 대표가 참석했다. 분리주의 반군 측에선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분리주의자들이 각각 자체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의 수장 알렉산드르 자하르첸코와 이고리 플로트니츠키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앞서 3일 포르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화통화를 갖고 휴전과 평화 촉진을 위한 노력을 전개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휴전 합의는 나토를 중심으로 서방국들이 러시아에 대해 군사 및 경제적 제재수위를 한 단계 높이는 도중에 나왔다. 나토 28개 회원국은 지난 4일 영국 웨일스 뉴포트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1,500만유로(190억원) 규모의 군사지원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군사지원 기금은 ▦후방지원 및 지휘체계 정비 ▦사이버전 ▦부상자 치료 등에 사용된다.
또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5개국 정상들은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별도회의를 갖고 러시아에 대한 추가제재에도 합의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이와 관련, 수익의 절반을 원유 또는 석유 제품의 수송 및 판매로 얻는 자산 1조루블(약 27조원) 이상의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와 방위산업체는 앞으로 유럽 금융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 등이 제재 안에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이 경우 러시아 최대 석유그룹인 로스네프트와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 기업 가즈프롬의 석유 자회사인 가즈프롬 네프트가 제재대상에 포함된다. 나토 정상들은 이어 러시아를 겨냥해 동유럽 회원국에 이틀 내 배치가능한 수천 명 규모의 신속대응군 창설을 승인했다.
이번 휴전합의로 우크라이나 긴장이 수그러들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러시아군 철수가 우선”(우크라이나)과 “독립 목표는 그대로”(반군)라는 기본 입장을 양측이 고수하고 있어 언제든 휴전은 깨질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월에도 양측이 휴전에 합의했다가 결국 교전이 재개된 적이 있다.
실제로 플로트니츠키는 이날 “휴전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하려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의 노선 변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교전 중단은 주민들의 희생을 멈추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며 아직 많은 일이 남아 있다”고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안드레이 푸르긴 부총리 역시 “정부군으로부터 단 한 발의 총성이라도 울리면 휴전은 곧바로 중단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아르세니 야체뉵 우크라이나 총리는 “휴전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아니라 포로셴코 대통령이 제시한 평화안에 따라 이행돼야 한다”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철수하는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선 정부군과 반군간 교전으로 지금까지 2,600명이 숨졌고 34만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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