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이 든 성배’라고 불리는 한국 축구의 감독직은 외국 명장들도 견디기 힘든 자리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만이 성공했을 뿐 나머지 사령탑들은 쓸쓸하게 퇴장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여덟 번째 외국인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제1호는 데트마르 크라머(독일)다. 1991년 1월 부임한 크라머는 국내 코치진과의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고 불과 1년만에 짐을 쌌다. 크라머 감독에 이어 아나톨리 비쇼베츠(러시아)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비쇼베츠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일본을 꺾고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올림픽 본선에서는 목표로 내건 8강 진출에 실패한 뒤 계약을 연장하지 못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유치한 한국은 2001년 1월 히딩크 감독을 데려왔다. 히딩크 감독은 투명한 선수 선발, 과학적인 훈련 등으로 월드컵 4강이라는 성적을 냈다. 히딩크의 뒤를 이은 움베르투 코엘류(포르투갈) 감독과 요하네스 본프레레(네덜란드) 감독은 최악 사례로 꼽힌다. 오만과 베트남, 몰디브에게 완패하거나 무승부로 한국축구의 체면을 바닥까지 떨어뜨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2005년 10월부터 태극전사들을 이끈 딕 아드보카트(네덜란드) 감독은 2006년 독일 월드컵 토고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2-1로 이겨 한국축구 사상 첫 원정 승리를 따냈다. 프랑스와의 2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16강 진출의 기대감도 키웠지만 마지막 스위스전에서 0-2로 져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다음 지휘봉은 핌 베어벡(네덜란드) 감독에게 넘어갔다. 한일월드컵에서 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던 베어벡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4위, 아시안컵 3위에 그치며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지 13개월 만에 물러났다.
노우래기자 sport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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