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고위 공직자가 돌연 엄청난 연봉을 받고 재임 중 자신이 압박하던 민간 기업으로 옮기는 ‘관피아’논란이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4일 미 언론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월가의 부도덕한 금융자본에 맞서 수 십 조원의 벌금을 물린 영웅들이 최근 잇따라 사직서를 내고 민간 행을 선언했다. 미 법무부에서 3인자로 불렸던 토니 웨스트 검사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 고위험 모기지 상품을 판매한 것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로부터 166억5,000만달러(17조원) 벌금을 받아낸 직후인 3일 사직 의사를 밝혔다. 웨스트 검사는 이직 후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정치적 야망이 큰 그가 중간 단계로 일단 민간 기업이나 로펌을 선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악덕 헤지펀드(SAC 캐피탈)의 불법 행위를 끈질기게 추적, 18억달러(1조9,000억원) 벌금을 물린 뉴욕 연방지검의 안토니아 앱스 검사도 같은 날 유명 로펌으로 이직하기 위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에 앞서 지난 주에는 미국 법무부의 사기범죄 분야 최고책임자인 제프리 녹스 검사도 대형 로펌(심슨대처바렛)으로 이직했다. 녹스 검사는 지난해 바클레이, UBS, 스코틀랜드 왕립은행 등 대형 금융기관이 런던 금융시장의 시장금리를 조작해 막대한 수익을 챙긴 사실을 적발, 이들 은행으로부터 유죄를 인정하고 10억달러(1조원) 벌금을 자진 납부토록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서민을 위해 대형 금융기관을 압박했던 스타 검사들이 높은 연봉의 민간 일자리로 줄줄이 옮겨가자, 공직자 민간 이직을 ‘직업 선택의 자유’ 관점에서 용인하던 미국 여론조차 일부에서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월스트리저널(WSJ)은 “민간으로 옮긴 거물 공직자가 대형 사건을 둘러싸고 과거 동료들과 맞서게 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공직자의 민간 이직이 잦아지면, 민간에 대한 감독 기관의 법 집행 강도가 느슨해 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고위 공직자의 민간 이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많다. 고액 연봉을 받는 민간 이직이 보장되어야만, 유능한 인재가 더 많이 공직에서 일하려 할 것이라는 논리다. WSJ은 전직 관료가 퇴직 후 통상 1년은 이전 업무와 관련된 분야를 맡지 못하도록 미국 법률이 정하고 있는 만큼 큰 부작용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소개했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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