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당신은 그렇게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다. 그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깊숙이 배어든다. 연한 색 카펫에 흘린 레드 와인의 얼룩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이 출간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스타 작가의 경우 초반 기세가 막판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벌써부터 최종 성적을 점치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4일 현재 ‘여자 없는 남자들’은 주요 인터넷서점 베스트셀러 5위권 안에 모두 진입했다. 판매부수는 대략 8만부에 이른다. 출판사는 3쇄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제 말들이 쏟아져 나올 시기다.
전작에 비해 판매량이나 속도는 어떤지, 주 독자층이 2030에서 3040으로 옮겨간 이유는 뭔지, 여성에 비해 적었던 남성의 구매비율이 갑자기 늘어난 건 왜인지. 이를 근거로 한 분석들의 양태도 대략 예상 가능하다. ‘20대 여성의 마음을 흔들어 놨던 하루키가 이제 40대 남성의 가슴을 울린다’라든가, ‘한국의 젊은 층에게 더 이상 하루키는 먹히지 않는다’ 등등. 전작과 성적을 비교해 ‘하루키 거품, 드디어 꺼지나’와 같은 성급한 분석도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러나 거품이 꺼졌다는 말보다는 구름이 걷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한국 사회가 하루키의 작품에 갖다 대온 그 오래된 프레임을 생각하면 말이다.
“풍문으로 주어진 하루키 신드롬 현상을 두고 우리 문단에서도 그에 대한 갑론을박을 주고 받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루키 문학의 본질 해부와 관련해서가 아니라, 그것의 한국적 수용, 영향의 측면과 관련된 문제로서였다.” 문학평론가 한기 씨가 문학사상에 이 글을 쓴 날짜는 놀랍게도 1996년 2월이다. 그로부터 20년이나 흐른 후에도 하루키를 보는 시선이 ‘한국적 수용과 영향의 측면’에서 조금도 바뀌지 않으리란 건 평론가 자신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하루키의 작품이 한국 20대의 삶을 반영해야 하나요?”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는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하루키의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반문했다. 반문은 “그리고 그렇다 해도 작가가 그걸 좋아할까요?” 라는 또 다른 반문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한국 청년들을 허무의 바다에서 집단적으로 허우적대게 했던, 작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양식이고 현상이었던 그 시절이 작가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한국에서 하루키는 오랫동안 문화적 현상으로만 소비돼 왔습니다. 하루키를 보는 외국의 관점은 노벨문학상 후보로서 작품의 주제가 동시대와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가에 집중돼 있는데 우리는 그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에만 관심이 있죠.” 신형철 씨는 하루키를 “시대를 대표하는 대가는 아니지만 큰 작가”라고 말했다. 구름처럼 하루키를 둘러싸고 있던 신드롬이 걷힌 후에도 들여다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아니, 구름이 걷힌 지금이 오히려 ‘하루키 월드’에 깊숙이 진입할 수 있는 적기일 수 있다. ‘1Q84’를 정점으로 조금씩 수그러들고 있는 하루키 열풍은 사실상 ‘하루키의 쇠퇴’가 아닌 ‘하루키 현상의 쇠퇴’일지도 모른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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