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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배드 캅, 굿 캅

입력
2014.09.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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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제네바 합의의 미국 협상대표 로버트 갈루치는 북핵 위기와 협상을 다룬 북핵 위기의 전말에서 파트너인 북한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피의자를 을러대는 나쁜 형사(Bad Cop) 역으로, 순회대사로 차석대표를 맡은 김계관을 좋은 형사(Good Cop)로 묘사했다. 저속한 표현에 직설적인 강석주는 곧잘 협상을 깰 듯이 행동했다고 한다. 반면 김계관은 언행이 부드럽고 말이 쉽게 통했다. 인상이나 말투에서 강석주는 강경ㆍ원칙주의자, 김계관은 온건파다. 김계관은 후일 9.19 공동성명, 2.13 후속 합의의 주역이다.

▦ 2000년대 초반 보건의료노조와 병원사용자 측의 단체협상을 참관했을 때다. 첫 발언에 나선 부대표 격의 여성 노조원이 날카롭고 격한 어조로 병원 측 대표들을 쏘아붙이며 기선을 제압했다. 반면 남성 노조위원장은 점잖은 어투로 병원 측을 상대하던 역할 분담이 이색적이었다. 범인 심문에 쓰이는 좋은 형사, 나쁜 형사 전략은 노조나 사측이나 협상에서도 흔히 쓰이는 방식이다. 당근만 제시하면 상대 요구는 더 커지고, 채찍만 휘두르면 상대가 얻을 게 없어 물러서지 않는 심리를 이용한 전술이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여당ㆍ유가족의 협상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주호영 정책위 의장이나 김재원 원내수석 부대표가 뻣뻣한 논리로 대응하는 걸로 봐서 나쁜 형사 역할을 자임한 게 아닌가 싶다. 특별검사 추천권만 하더라도 2차 합의보다 융통성을 보일 것 같더니만 도로 후퇴다. “더 이상 양보할 게 없다”거나 “청와대도 막 조사하겠다는 거 아니냐”고 몰아붙이는 걸로 봐서 그렇다. “쓸개를 빼놓고 하겠다”던 이완구 원내대표도 법ㆍ원칙론에서 나아가는 게 없다. 좋은 형사 노릇을 할 때가 아니라고 보는지 새로운 제안도 없다.

▦ 강경하기는 유가족이 앞선다. 3차 협의에서 30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자식을 잃은 입장에서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경근 유가족 대변인은 “우리는 흥정을 하러 간 게 아니다”라고 했다. 가치의 교환과 절충을 부정해서는 결과를 낼 수 없다. 없는 법과 절차를 만드는 일이다. 진상조사위에서 유가족은 빠질 테니 수사권ㆍ기소권을 달라고 먼저 제안을 하는 건 어떨까. 양쪽에 굿 캅이 없으면 이 협상은 비관적이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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