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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웃게 만드는 일, 당신은 하고 있나요?

입력
2014.09.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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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서 4년째 뜨개질 필립스씨... 영어 가르치다 반해 9년 전 시작

"행인들 비싸다며 안 사 가도 그만 아름다움 알아보는 사람이 고객"

캘빈 필립스가 2일 오후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별관 앞에서 좌판을 펼쳐 놓고 뜨개질하는 모습을 행인들이 쳐다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캘빈 필립스가 2일 오후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별관 앞에서 좌판을 펼쳐 놓고 뜨개질하는 모습을 행인들이 쳐다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사람들의 발길로 정신 없는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별관 앞에서 흰머리가 성성한 백인 남성이 좌판을 펼쳐 놓고 뜨개질에 열중하고 있다. 좌판에는 자신이 직접 만든 모자와 수세미, 가방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평일 비만 오지 않으면 낮 12시부터 5시까지 어김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남자는 캐나다인 캘빈 필립스(57)다. 2011년 가을 소공동에 자리를 편 이후 4년째다. 그 사이 바뀐 것이라면 한국은행 본점 앞에서 별관 앞으로 100m 정도 옮겨왔다는 것뿐이다.

그는 유기농, 100% 면 등 원가 자체가 비싼 고급 실을 사용한다. 또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을 하다 보니 모자나 가방 하나 완성하는 데 꼬박 하루 이상 걸린다. 그런 만큼 5만원에서 10만원을 넘는 고가(?) 제품이 대부분이다. 길거리 물건이라고 만만히 본 손님들이 깜짝 놀라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그는 이제 익숙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손님을 상대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가격을 물어와 ‘6만원이에요’하면 손님이 계속 ‘만원? 만원?’하며 되물으세요. 그럴 때는 ‘이거 다 제가 만든 거예요. 메이드 인 차이나 아니에요’라고 설명해요. 그래도 납득하지 못하는 눈치면 그냥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해버려요.” 그렇다 보니 하루 매상은 10만~15만원이 고작이다. 물건 2, 3개 파는 정도다. 주문 판매도 있지만 그래 봐야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 얼마를 버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좋은 재료로 만든 고품질의 제품을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제가 만든 물건들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가치를 인정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바로 뒤로 수많은 시내버스가 소음과 매연을 내뿜으며 지나가도 아랑곳 않는 그에게도 견디기 힘든 어려운 점이 있다. 옆에 있는 하수구다. “여기에서 냄새 나요. 냄새 많이 나요”라고 한국어로 말하며 코를 찡그리는 그는 악취 때문에 옆에 있는 나무 아래에 민트(박하)를 심었다. 손으로 민트를 비벼 코에 갖다 대더니 “이렇게 하면 조금 괜찮아요”라며 웃는다.

캐나다에서 박물관학을 전공한 그는 영어강사로 일본에 갔다가 한국을 알게 됐다. 2005년 주한 캐나다 대사관에서 주최한 파티에서 뜨개질 명장 강재석(70)씨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직접 만든 머플러를 두르고 있던 그에게 강씨가 뜨개질을 배워볼 것을 제안하자 서슴지 않고 영어강사 일을 그만뒀다. 이 후 강씨에게 뜨개질을 배우며 인사동에서 가게를 함께 운영하다 거리로 진출하게 됐다.

워낙 오가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일화도 많다. “한 회사원이 ‘돈 많은데 재미로 와서 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다소 무례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반은 맞아요. 난 재미있어서 이걸 하고 있어요. 당신은 당신이 하는 일이 재미있나요?’라고 웃으며 물었죠. 그 회사원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왜 그만두지 않는 거죠? 당신이 즐겁고 행복한 일을 찾으세요’라고 말해줬습니다.”

작은 캠핑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무념무상한 표정으로 뜨개질 하는 필립스의 모습은 세파를 초월한 도인을 연상시킨다. “뜨개질은 나에게 열정, 즐거움 그리고 행복이에요. 열정을 따라 뜨개질을 하면 살아 있다는 걸 느끼고, 하고 싶은 걸 하니 즐겁고 행복해요. 오늘처럼 장사가 안 되는 날에도 말이에요.(웃음) 모두가 돈을 떠나서 하고 싶은 일,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김새미나 인턴기자 saemi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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