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현대차 아슬란은 미국서 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습니다. 반면 르노삼성의 SM7은 오직 한국 소비자를 위한 차입니다. 한국 회사가 미국 시장을 위해 만든 차와 프랑스 회사가 한국 시장 만을 목표로 만든 차. 그것이 둘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박동훈 르노삼성 부사장은 3일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뉴 SM7 노바(NOVA)’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차가 올 가을 출시 예정인 새 차 ‘아슬란’과 다른 점을 묻는 질문에 ‘국적’을 꺼내 들었습니다. 새 차의 성능이나 디자인 대신 차 ‘족보’를 언급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박 부사장은 2004년 르노삼성이 처음 SM7를 만들 때 작은 차를 주로 만들던 프랑스 르노 본사를 향해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배기량 3,000㏄ 이상의 큰 차가 없으면 안 된다’고 설득했다고 했습니다. 본사는 프랑스지만 한국 소비자를 위해 고민했고, 생산도 한국(부산 공장)에서만 하는 ‘토종 한국차’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박 부사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현대차가 발끈했습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4일 “아슬란은 기획 단계부터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독일 고급 브랜드가 강조하는 ‘딱딱하지만 힘이 느껴지는 운전’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운전자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디자인부터 국내 소비자 취향에 맞춘 차”라고 반박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해외 수출을 감안했다면 애초 해외 목표 판매량을 정했겠지만 아슬란은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어 “SM7이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르노(프랑스)와 르노의 연합군 닛산(일본)이 만들어 놓은 엔진, 플랫폼 등을 그대로 들여와 겉모습만 살짝 바꿨기 때문”이라며 “한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역공을 펼쳤습니다.
훨씬 큰 해외 시장은 고려도 하지 않고 한국 시장만 목표로 삼는다는 두 회사의 ‘애정 공세’를 듣다 보면 두 회사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근 현대ㆍ기아차는 7년 만에 국내 시장 점유율이 70%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점유율이 14%까지 늘어난 수입차 공세가 주원인입니다. 안방 사수를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고, 그 결과가 아슬란입니다. 르노삼성의 SM7은 2005년 2만5,000대 이상 팔렸지만 이후 하락세가 이어졌고, 2011년 부진 탈출을 위해 내놓은 완전 변경 모델도 2013년 판매량이 3,500대에 그쳤습니다. 오직 한국을 위해 만든 차의 판매 실적이 부진하자, 르노-닛산 그룹 내에서 르노삼성의 설 자리도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신차를 내놓으며 ‘족보’를 들먹이는 것을 보자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오늘날 소비자가 차를 고르는 기준은 ‘어떤 차가 한국차인가’가 아니라 연비 좋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운전을 즐길 수 있는 차입니다.
부산=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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