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터전을 불태우라' 주제로 38개국 111명 작품 413점 선봬
"흥미로운 주제 깊이 있게 풀어"
"1990년대 작품 세계로 퇴행" 평론가들 반응 벌써부터 엇갈려
건물을 뚫고 나오는 거대한 문어, 나무를 태우는 난로의 연통에서 나오는 연기,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학살 당한 민간인들의 유골을 담은 두 개의 컨테이너. ‘터전을 불태우라’는 주제로 5일 개막하는 광주비엔날레의 전시관 앞 광장에서 만나는 풍경이다.
외벽에 걸린 문어 그림과 마당에 놓인 두 개의 난로는 각각 제러미 델러와 스털링 루비의 작품이다. 탈출하는 문어와 난로의 연기가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
컨테이너는 3일 진주와 경산에서 왔다. 비엔날레 광장에서 작가 임민욱의 퍼포먼스 ‘내비게이션 아이디’ 가 진행됐다. 컨테이너 수송 차량을 호위한 헬기가 비엔날레 광장을 선회하는 가운데 버스에서 내린 희생자 유족들을 광주의 5월어머니회 회원들이 맞았다. 유족들은 컨테이너 앞에 간단히 제수를 차려 술을 올리고 절을 하며 원혼을 달랬다.
햇수로 20년, 10회째인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한국 작가 22명을 포함해 38개국 111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41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참여 작가의 대부분이 비엔날레는 처음이고 대형 신작 39점이 포함됐다. 신작 중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은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의 홀로그램 영상 ‘피츠카랄도’다. 작가가 직접 연기한 감동적인 1인 오페라로, 캄캄한 복도가 꺾이는 안쪽의 허공에서 유령이 외롭게 노래한다.
제시카 모건 총감독(영국 테이트모던미술관 큐레이터)은 비엔날레전시관 전체를 불타는 집으로 연출했다. 5개 전시실을 불꽃과 연기를 모티프로 한 스페인 작가 엘 울티모 그리토의 픽셀 디자인 벽지로 도배했다. 각 전시실은 구속과 투쟁의 상황에 놓인 신체와 개인 주체의 관계, 급속히 확산되는 소비문화와 그로 인한 상실, 집과 파편화한 도시 풍경 등 작은 주제로 작품들을 구성했다.
‘터전을 불태우라’는 주제와 불 타는 집 같은 전시장 연출은 격렬한 논쟁이나 위협적인 도발을 기대하게 하지만,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그리 뜨겁지 않다. 여느 미술 전시와 달리 도발과 파격으로 자주 논쟁을 일으키는 비엔날레의 특성에 비추면 얌전한 전시라고 할까. 흥미로운 작품이 많지만 뇌관을 건드리는 작품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가권력의 공포와 선동을 기괴한 연극 무대처럼 펼쳐 보인 에드워드 킨홀츠와 낸시 레딘 킨홀츠의 ‘오지만디어스 퍼레이드’처럼 몇몇 스펙터클한 작품이 눈길을 끌긴 하지만 파괴력은 떨어진다.
3일 언론과 전문가들에게 미리 공개한 전시를 둘러본 평론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흥미로운 주제를 깊이 있게 잘 풀어낸 세련된 전시”라는 평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반이정 평론가는 “각 전시실에 소주제를 분산하면서 주제의 응집력이 떨어져 이런 작가도 있구나, 하고 보여주는 데 그친 느낌“이라며 “함량 미달 전시“라고 평했다. 임근준 평론가는 “1990년대 중반부터 유행한 제3세계, 성소수자, 탈식민주의 등 타자성을 다루는 미술을 또 보여준 것은 광주비엔날레의 퇴행”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당시로선 진보였으나 2014년인 지금 이를 반복하는 것은 진보적인 척하는 제스처일 뿐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퍼포먼스가 많다. 전시관 곳곳에서 음악(‘임을 위한 행진곡’이 살짝 숨어 있다)에 맞춰 관객들에게 숨쉬기 체조를 시키는 옥인콜렉티브의 ‘작전명-님과 노래를 위하여’, 숨을 멈춘 인형(인형은 원래 숨쉬지 않는다!)을 살리려는 필사적인 몸짓의 나체 퍼포먼스인 정금형의 ‘심폐소생술’은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11월 9일까지 66일간 이어진다.
광주=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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