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이 양형 뒤집은 첫 사례… 불투명한 운영 스스로 권위 실추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의 전격적인 뒤집기 중징계로 기로에 선 것은 KB금융만이 아니다. 금감원장 자문기구로 제재 수위를 결정해온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 역시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두 달 넘게 질질 끌며 어렵게 내린 결론이 하루 아침에 뒤집혔으니 이럴 거면 왜 제재심이 필요하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최 원장의 결정은 제재심이 내린 양형 결정을 금감원장이 수용하지 않은 첫 사례다.
물론 제재심은 금감원장의 자문기구일 뿐이다. 그러나 제재심 결정을 뒤집는 것은 제재 절차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던 금감원이 원칙을 뒤집은 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은 제재심이 검사 결과를 추인하는 ‘고무도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의식, 2000년부터 외부 전문가를 위원으로 영입하고 숫자도 늘려왔다. 현재 제재심 위원 9명 중 과반인 6명이 외부위원이다. 최 원장은 지난해 취임 직후 제재 대상자의 반론권 강화를 위해 검사부서와의 대질을 허용하는 대심제를 제재심에 도입한 당사자다.
제재심이 불투명한 운영으로 스스로 권위를 실추한 측면도 크다. 외압 차단을 명분으로 외부위원 명단을 비공개에 붙이고 있지만 실상은 금융당국에 우호적인 인사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변호사, 교수 등으로 구성된 현재 외부위원 역시 금융당국 인맥과 연결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한국금융연구원 출신이 다수다. 재경부 출신인 임영록 회장과 금융연구원 출신인 이건호 행장이 연루된 이번 제재심 과정에선 특히나 로비설이 파다했다. 일각에선 제재심 위원들이 금감원 검사부서를 따돌린 자리에서 두 사람에 대한 경징계를 결정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학계 등에선 금융당국에서 독립된 재제위원회 설치를 주장하고 있다. 고동원 성균관대 교수는 “위원 전원을 외부 인사로 구성하고, 심의기구가 아닌 최종 결정권을 갖는 법적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앞으로도 공정성과 독립성을 가진 제재심의 심의 결과를 최대한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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