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위 바브링카 꺾고 US오픈 4강...96년 만에 아시아 남자 최고성적
지능적 플레이로 체격 한계 극복... 세계 1위 조코비치 넘을지 주목
테니스 전문가들과 도박사들이 경기를 앞두고 내기를 걸었다면 2-8, 혹은 1-9로 불리했던 게임이다. 4일 미국 뉴욕 빌리진 킹 국립 테니스코트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 US오픈 남자단식 8강전, 니시코리 게이(25ㆍ일본ㆍ랭킹11위)와 스타니슬라스 바브링카(29ㆍ스위스ㆍ4위)가 만났다.
바브링카는 내심 호주오픈에 이어 올 시즌 두번째 메이저 대회 결승행을 점쳤을 것이다. 니시코리와는 역대전적 2전승을 거뒀고, 특히 상대에게서 이렇다 할 필살기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니시코리에게선 파워 넘치는 서브와 현란한 테크닉, 그리고 한발 앞서는 빠른 발도 눈에 띄지 않는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꾸준함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IBM 컴퓨터가 제공하는 바브링카와 니시코리의 8강까지 경기내용을 살펴봐도 바브링카의 우위가 예상됐다. 서브에이스에서 43-22, 브레이크포인트 위기를 맞이한 경우가 15-28 등으로 바르링카가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브 최고 속도도 바브링카가 218km에 달한 반면 니시코리는 199km에 그쳤다.
그러나 결과는 니시코리의 3-2 역전승이었다.
아시아 남자 테니스의 자존심 니시코리가 지난 1월 호주오픈 챔피언 바브링카를 3-2(3-6 7-5 7-6 6-7 6-4)로 물리치고 US오픈 준결승에 선착했다. 4시간15분에 걸친 사투였다. 니시코리는 앞서 16강전에서도 밀로스 라오니치(24ㆍ캐나다ㆍ6위)와 4시간19분 풀세트 접전을 펼쳤다. 2경기 연속 5세트 접전에 9시간 가까이 코트를 누비는 강철체력을 과시했다. 경기후 니시코리는 피곤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아무 이상 없음을 뜻하는 “OK”라고 답했다. 니시코리의 다음 상대는 노박 조코비치(27ㆍ세르비아ㆍ1위)다. 상대전적은 1승1패다.
일본인으로서는 1918년 구마가이 이치야가 이 대회 준결승 진출 이후 96년만이다. 구마가이는 1920년 벨기에 앤트워프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은메달리스트다.
니시코리로서도 자신의 생애 첫 메이저 4강행이다. 종전까지 최고성적은 2012년 호주오픈 8강행.
아시아 선수로 4대 메이저 단식 챔피언에 오른 경우는 중국의 리나(32)가 유일하다. 리나는 2011년 프랑스오픈 여자단식을 제패했다. 하지만 남자는 1920년 윔블던에서 시미즈 젠조(일본)의 준우승만 있을 뿐 챔피언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다만 중국계 미국인 마이클 창이 1989년 프랑스오픈에서 17세4개월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정상에 서기도 했다.
니시코리는 올해 초부터 마이클 창과 파트타임 코치로 손을 잡고, 일취월장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이들은 남자프로테니스(ATP) 2개의 타이틀을 합작했다. 2007년 프로에 데뷔한 니시코리의 다섯 번째 우승컵이다. 키 178cm 몸무게 68kg로 평범하기보다는 왜소한 편인 니시코리는 오른손 전형으로 양손 백핸드를 구사한다. 지능적인 네트플레이와 각이 크고 예측력이 좋아 리턴샷에서 승부를 거는 편이다. 바브링카와의 경기에서도 78%-60%로 네트플레이포인트에서 앞섰다. 국내 테니스인들은 바로 이점에서 한국의 정현(19ㆍ삼일공고)도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테니스협회 주원홍 회장은 “니시코리는 소니의 후원을 받아 14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세계적인 코치가 늘 니시코리의 곁을 지켰다”라고 말했다. 주회장은 이어 “반면 정현은 순수 국내파다. 체격은 180cm를 웃도는 정현이 더 낫다. 지난해 윔블던 주니어 단식 준우승은 정현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정현은 지난주 방콕 ATP 챌린지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정현과 함께 한국테니스의 미래를 담당할 이덕희(16ㆍ마포고)와 홍성찬(17ㆍ횡성고)도 US오픈 주니어 단식 16강에 안착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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