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뮤지컬 업계 이슈의 중심에는 배우 정성화가 있었다. ‘레미제라블’로 각종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휩쓴 그는 데뷔 이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개그맨 출신’이라는 수식어를 떼는데 성공했다. 약 10개월간 원캐스팅으로 장발장을 연기하며 무대 위에서 고군분투한 그에게 남우주연상은 당연한 결과였다.
한국 뮤지컬에서 원캐스팅 주연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 배역을 두 명의 배우가 번갈아 연기하는 더블캐스팅이 관례다. 세 명이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트리플캐스팅, 심지어 네 명이 연기하는 쿼터플캐스팅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반면 세계 뮤지컬의 중심이라는 미국과 영국에서는 원캐스팅이 주를 이룬다. 예를 들어 뮤지컬 ‘조로’의 남자 주인공은 영국 웨스트엔드 초연 당시 매트 롤 혼자서 연기했지만 올해 한국 무대에서는 배우 김우형과 가수 휘성, 아이돌그룹 ‘샤이니’ 멤버 키, ‘비스트’ 멤버 양요섭 등 4명이 연기한다.
이처럼 뮤지컬의 본고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문화가 한국에 정착한 이유는 마케팅 때문이다. 거대 팬덤을 거느린 아이돌 출신 가수가 무대에 서면 그들을 보러 오는 ‘오빠 부대’로 티켓을 어느 정도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배우 여럿이 한 배역을 번갈아 연기하면 뮤지컬 팬들은 각기 다른 연기를 보기 위해 같은 공연을 여러 차례 관람하기도 한다. 업계에서는 이들을 ‘회전문 관객’이라고 부른다.
멀티캐스팅 자체를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장사’ 만을 위한 멀티캐스팅 탓에 국내 뮤지컬 팬이 원캐스팅의 매력을 접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원캐스팅으로 진행하는 뮤지컬은 오랜 기간 같은 멤버로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오른다. 배우들간의 호흡은 물론 배우-오케스트라의 호흡 역시 상대적으로 더 뛰어나다. 외국에서는 바로 이 점 때문에 멀티캐스팅보다 원캐스팅을 선호한다. 또 멀티캐스팅에서는 제작비의 대부분이 배우 출연료로 쓰이기 때문에 무대장치 등 공연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
외국에서도 장기공연을 할 때 더블캐스팅을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얼터네이트, 커버 등의 캐스팅이 보편화돼 있다. 얼터네이트는 같은 배역을 두 명의 배우가 나눠 한다는 점에서 더블캐스팅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원배우가 7, 8회 공연을 한다면 얼터 배우가 2, 3회 공연을 하는 등 비중에서 차이가 있다. 커버는 주연 캐릭터들의 안무, 동선, 대사 등을 암기해뒀다가 주연배우가 사고가 나거나 건강이 나빠졌을 때 무대에 선다. “배우들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멀티캐스팅을 한다는 한국 뮤지컬 제작사들의 변명은 애초부터 성립하지 않는 셈이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