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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그림과 음악, 미술관과 음악 공간

입력
2014.09.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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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는 몇 시간도 앉아 있을 수 있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갔을 때 가장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을 보고 한참 넋을 놓고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림 속 밀밭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캔버스를 마주하고 그림을 그렸을 고흐를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울렁거렸고, 그의 고독함과 외로움에 사로잡혀 말할 수 없이 쓸쓸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나는 참 좋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어떤 진한 감정을 느끼는 그 순간이 좋다. 오직 그림 하나 만으로도 그 미술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된다.

한때 음악이 하기 싫었다. 음악은 순간 예술이라 그 시간이 지나면 끝이다. 연주하는 동안만 빛날 뿐 그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만다. 말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음악은 형태가 없어서 만들어지는 순간 증발해 버리는 것이라 할 수도 있으리라. 물론 여기서의 음악은 실제로 연주되고 있는 음악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이유로 허무감을 느꼈다. 영원히 살아남는 음악? 그런 음악을 만드는 것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 결국 무엇인가.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내 만든 나의 음악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싫었다.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더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시대에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해도 그림은 남아있다. 사라지지 않는다. 그 존재감이 부러웠다. 그림은 화가와 보는 사람이 물리적으로 전혀 얽히지 않는다. 어떤 강요도 없다. 그림을 보는 동안 나는 자유롭다.

음악을 하면서 늘 가장 마음에 짐이 되는 것은 ‘내가 이 무대를 책임질 수 있는가?’ 이다. 공연장에 특정 시간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아무 것도 다른 것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의 음악 만을 듣게 하는 것이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했지만 실제로 그렇다. 그래서 더욱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림은 관객을 붙잡지 않는다. 시간을 제한하지도 않는다. 아무 느낌이 오지 않는 그림은 그냥 지나치면 된다. 마음에 드는 그림은 언제까지고 바라볼 수 있다. 심지어 그 그림을 살 수 있기도 하다!

음악과 그림의 다른 점을 발견하며, 마음이 요동치기도 했다.

얼마전, 환기 미술관에서 공연을 했다. 로빈 미나드의 작품인 공간에서 라는 제목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로빈 미나드는 환기미술관 3층 전시실 전체를 푸른색으로 연출했고 사운드와 빛, 이미지 등을 극대화 해서 시적인 공간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그 공간 한 쪽 바닥에 가부좌로 앉아 물과 모래 등을 이용해서 자연의 소리를 만들고, 전자악기를 통해 그것을 증폭시켰다. 국악기에서 사용하는 모든 자연의 요소를 품은 악기인 해금으로 선율을 만들어내고, 로빈 미나드가 이미 공간에 흐르게 설정해 놓은 사운드를 따라 가기도 하고, 실시간으로 연주를 녹음해서 그 음원을 이용해 다시 다른 선율을 만들어 보태기도 한다.

관객들은 전시실 아무 곳에서나 마음대로의 상태로 존재한다. 그림을 보고 지나가듯이 그냥 지나 갈 수도 있다. 푸른 빛의 공간. 나에게는 물 속 처럼 느껴졌다. 내가 쓰는 활이 물을 휘젓기도 하고, 우리가 내는 소리가 물방울이 되기도 했다. 우리의 소리는 공간의 일부이자 어디론가 흘러가는 물결일 뿐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 공간의 다른 부분인 관객이다. 우리는 모두 물결이 되어 함께 어디론가 흘러갔다.

음악, 그리고 우리 모두가 존재하는 공간은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참 좋았다. 미술관에서 그림들을 대하며 느꼈던 자유로움도 좋았고, 공간에 대한 압박감 없이 그냥 ‘존재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미술관이나 공연장. 실은 내가 마음 속으로 경계를 만들어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누군가의 마음에 닿거나 들어가지 못하면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음악이기 때문에 혹은 그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나의 자유롭지 못한 마음 탓이다. 흘러가면 그 뿐, 살아남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는가. 다시 음악하는 것이 즐거워진다.

꽃별 해금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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