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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전기차의 음모

입력
2014.09.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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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 서적 기회의 대이동에 따르면 1996년 미국 GM이 EV1이라는 전기자동차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공해를 막기 위해 자동차 업체마다 전체 판매량의 10~20% 정도를 배기가스가 나오지 않는 자동차를 판매하도록 ‘배기가스 제로’법을 만들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가 만들어졌다. EV1의 성능은 의외로 놀라웠다. 4시간 충전하면 160㎞를 주행할 수 있었고, 시속 130㎞로 달릴 수 있어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전기차가 사라졌다.

▦ 전기차가 나오자 석유재벌들이 긴장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가 줄어들면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미국 석유재벌들은 대통령까지 탄생시킬 수 있는 힘있는 세력이다. 휘발유 소비가 줄어들면 세금도 줄어든다. 자동차 부품, 엔진오일, 오일 필터를 만드는 회사도 위기다. 결국 GM은 FBI까지 동원해 전기차를 수거해 사막에서 폐기했다. 크리스 페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는가?(Who killed the electric cars?)는 전기차가 사라지는 충격적인 과정을 보여준다.

▦ 노면 전차의 운명도 비슷했다. GM을 비롯한 자동차 회사들은 정유회사, 타이어회사와 손잡고 미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도로를 건설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동시에 전차를 제거하는 작업에도 앞장섰다. 자동차 회사들은 1920년대 후반부터 전차 회사를 사들여 전차를 폐기하고 선로와 전선을 제거했다. 한국에서는 1898년 청량리∼서대문 사이에서 전차 운행을 시작했으나, 1968년 모두 폐기됐다. 당시 자동차는 20만대가 채 안됐다.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은 운행이 중단된 전차에 대한 추억을 담은 노래다.

▦ 정부가 저탄소차협력금제의 시행 시기를 내년에서 2020년 말로 연기하기로 했다. 저탄소차협력금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중ㆍ대형 차량 소비자에게 부담금을 부과하고 이를 경차나 친환경차 소비자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원래는 지난해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자동차업계가 반발하면서 내년으로 늦춰졌다가 다시 후퇴했다. 시행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카 등 친환경 자동차의 보급 속도가 늦은 것이 혹시 자동차ㆍ석유업계의 음모 때문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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