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가 일련의 시국 사안을 둘러싸고 정부에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3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전날 열린 정기회의에서 뜻을 모은 결과다.
쟁점인 기소권ㆍ수사권 부여 여부에 대해서는 “이번 참사는 초동 대처와 구조, 수습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국가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므로 국가가 조사와 기소의 독점을 고집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조사와 기소의 국가 독점은 결코 만고불변의 절대 가치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의평화위는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서도 “정치권과 국가가 유가족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보다 이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시간 30분간 이어진 회의에선 현 시국을 비상하게 보는 발언이 이어졌다. 한 참석자에 따르면 “정치권이 마치 유족과 밀고 당기는 거래를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한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 정부라면, 국민이 어떻게 믿겠는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는 정치권과 사회 일각의 막말은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회의에선 경찰의 전주교구 박창신 신부에 대한 출석 요구도 논란이 됐다. 전북경찰청은 지난해 11월 열린 ‘불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에서 한 박 신부의 강론을 이유로 2차 출석 통보를 했다.
정의평화위는 이와 관련해 “사제의 양심에 따른 목소리를 ‘종북몰이’ 논쟁으로 호도해 국가권력기관의 대선 부정개입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희석하고 억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평화위는 이어 “종교예식 중 행한 설교를 문제 삼는 것은 양심의 자유만큼이나 지켜져야 할 종교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사안”이라며 “시민의 정치ㆍ경제적 저항과 권력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결국 ‘공안통치체제의 일상화’로 귀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의평화위가 다음달 21일 열기로 한 정기 세미나도 의미심장하다. ‘새로운 독재와 국가: 신자유주의와 교회의 응답’이 주제다. 21세기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국가ㆍ경제 권력, 그리고 이들 권력이 인간의 존엄성과 시민의 권리를 어떻게 침해하고 있는지 짚어보는 자리다. ‘새로운 독재와 국가’, ‘삼성의 사회적 지배’를 주제로 한 기조발제와 ‘새로운 독재 앞에 권리’, ‘새로운 독재 앞에 약자’, ‘새로운 독재 앞에 인간존엄’, ‘새로운 독재와 한국 교회의 응답’ 이란 주제 발표가 이어진다. 세미나에는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삼성반도체 피해자 유가족 등도 발표자로 참석한다.
정의평화위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내란음모 사건, 진보정당 해산, 전교조 법외노조화, 국정교과서 전환 추진 등 일련의 사건에서 보인 현 정권의 태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라며 “해묵은 이념 논리로 시민의 연대와 저항을 재단하고 이를 무력화 하려는 정부에 보내는 비판”이라고 말했다.
한편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선 천주교 사제와 평신자를 아우르는 공동 대응기구도 출범할 예정이다. 정의평화위 관계자는 “추석 후 정의평화위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수도자, 평신자가 참여하는 가칭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천주교 네트워크’를 만들어 유가족과 본격적인 연대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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