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사성폐기물 쌓여 가는 상황에 15년간 다양한 처분 방식 연구
두께 130m 점토층에 밀봉 결정, 2025년부터 실제로 묻을 예정
덜컹하는 굉음과 함께 철문이 닫히자마자 엘리베이터가 1초에 약 2m씩 하강하기 시작했다. 도착한 곳은 지하 약 490m 점토층 한가운데. 문이 열리자 폭과 높이가 각각 약 4.5m인 거대한 아치형 갱도가 생경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파리에서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250㎞ 정도 달려 찾은 뷰흐의 지하 세계는 지상과 완전히 격리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 원전당국의 계획대로라면 2025년부터 이 지하 갱도에 원자력발전소에서 쓰고 남은 사용후핵연료가 밀봉 저장된다.
뷰흐 지하갱도는 두께 약 130m의 점토층에 여러 개가 복잡한 미로를 이루며 뚫려 있다. 내부 기압은 지상과 별 차이 없지만, 온도는 25도 안팎으로 약간 덥다. 바닥과 벽면, 천장 대부분엔 콘크리트가 덮여 있는데, 군데군데엔 점토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런 곳엔 센서가 설치됐다. 사용후핵연료에서 나오는 열이 점토층을 변질시킬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센서가 측정한 데이터는 광섬유를 통해 지상으로 송신된다.
프랑스 방사성폐기물관리청(ANDRA)이 뷰흐를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 가능 지역으로 선정한 결정적 이유가 바로 점토층이다. 사용후핵연료에서 독성이 강한 방사성물질이 빠져 나오지 않도록 차폐하려면 지층의 구성 성분이 중요하다. 국제학계에선 점토나 암염, 화강암 등이 적합하다고 보는데, ANDRA는 점토층이 최적이라고 결론 냈다. 특히 뷰흐 점토층은 약 1억5,000만년 전 생성돼 두껍고 안정적이며, 조직이 치밀해 물이 잘 침투하지 않는다.
이 점토층에 지름 70㎝, 길이 80~100m에 달하는 스테인리스 관을 박고 그 안에 사용후핵연료를 담아 밀봉한 용기를 넣어 점토로 덮겠다는 게 ANDRA의 계획이다. 실제로 갱도 벽면에는 이미 박아 놓은 스테인리스 관이 여럿 있다. 관 두께가 너무 얇으면 방사능 누출 우려가 있고, 너무 두꺼우면 녹이 슬고 수소가 발생하면서 점토층이나 스테인리스 재질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갱도에 동행한 에릭 프와로 ANDRA 홍보담당은 “현재로선 두께 23㎜ 안팎이 적절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갱도에 들어온 지 20~30분 지나자 심한 황사 때처럼 목이 칼칼해졌다. 환기시설이 가동되긴 해도 지상보다 산소가 부족하고 먼지가 많다. 때문에 한 사람이 갱도 내부에 머무는 시간은 8시간으로 제한된다. 기술진을 포함해 지하 갱도에 동시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총 49명. 갱도 내부에 갖춰진 안전시설이 수용 가능한 최대 인원이다. 휴대용 통신기기로 내부 인원들의 개별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프랑스는 방사성물질 분리와 변환, 지표면 저장, 우주로 이송 등 다양한 사용후핵연료 처분 방식들을 15년간 연구했다. 하지만 장기적, 현실적으로 가장 안전한 해결책은 땅 속 수백m 깊이에 파묻는 심지층 처분이라고 판단해 2006년 법으로 결정했다. 핀란드와 스웨덴도 같은 방식을 채택해 프랑스와 비슷한 준비를 하고 있다.
뷰흐 심지층에 묻힐 사용후핵연료는 고준위, 중준위ㆍ장수명 폐기물이다. 원전 쓰레기 중에서도 방사능이 아주 많이 나오거나 수천~수만년 동안 내뿜는 독한 것들이다. 원전에서 나오는 전체 방사성폐기물 부피의 3.2%에 불과하지만, 방사능은 99.9%를 방출한다. 지금까지 프랑스 원전에서 나온 고준위, 중준위ㆍ장수명 폐기물은 라하그와 마쿨, 카다라쉬 등 3곳에 있는 중간저장 시설에 보관돼 있다. 200도가 넘는 온도를 수십 년 동안 물이나 공기로 냉각시켜 90도 아래로 떨어뜨린 다음 뷰흐에 묻는 것이다.
현재의 뷰흐 갱도는 사실 실제 처분시설이 아니라 연구시설이다. 기술진들은 사용후핵연료를 진짜 파묻어도 될지 모형 핵연료로 실증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ANDRA는 2017년 원전당국에 허가를 신청하고, 2020년 실제 영구심지층지질처분장(CIGEO)을 짓기 시작해 2025년부터 진짜 사용후핵연료를 들여놓을 예정이다. 알랭 롤랑 ANDRA 부소장은 “지하 약 500m 깊이에 먼저 15㎡ 규모로 건설되고, 향후 120년 동안 단계적으로 확장돼 2040년까지 프랑스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처분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갱도 연구시설을 유치하겠다고 나선 지역은 뷰흐 말고도 마쿨, 비엔느 등 2곳이 더 있었다. 그러나 마쿨은 정치적, 비엔느는 과학적, 상업적 이유로 무산돼 결국 뷰흐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됐다. 더구나 CIGEO에 묻힐 고준위, 중준위ㆍ장수명 방사성폐기물은 각각 30%, 60%가 이미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프랑스 원전당국이 뷰흐의 CIGEO 계획을 허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NDRA는 “뷰흐 주민을 포함한 프랑스 국민 20여명을 뽑아 공개토론회를 열었고, 관련 정보도 인터넷으로 투명하게 알리고 있다”며 “CIGEO 계획이 본격 시작되면 500~1,500명의 고용 창출, 주변 도로 확장, 상업 활성화 등 지역 경제에 큰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뷰흐 주민들 사이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남아있다. “100여명이 사는 작은 동네가 (위험을) 다 감당해야 하는데,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날 연구시설에 찾아온 앙투안느 제라르 뷰흐 시장은 “갱도가 들어서기 전 옥수수밭이었던 땅을 빼앗긴 농민들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며 “지방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놓고 뷰흐 주민들에게 그 피해를 뒤집어 씌운 꼴”이라고 유치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돌아간 뒤 정문 앞 횡단보도에 적혀 있는 “ANDRA는 물러가라”는 구호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뷰흐(프랑스)=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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