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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품은 카페 명품 커피향...강릉 가는 또 다른 이유

입력
2014.09.0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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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茶문화 발생지 옆 작은 어촌... 색다른 자판기 커피로 유명세

커피 명인들 속속 들어와 가게 열어

지중해풍·통나무 별장·산장 등 해변가 다양한 건물들도 볼거리

스페셜티 급 원료로 특별한 맛... 주말 명당자리엔 관광객 장사진

강릉 안목항의 커피는 고급 원두와 세심한 바리스타의 정성과 함께 탁 트인 바다 정경을 지녀 그 맛이 남다르다. 강릉문화재단 제공
강릉 안목항의 커피는 고급 원두와 세심한 바리스타의 정성과 함께 탁 트인 바다 정경을 지녀 그 맛이 남다르다. 강릉문화재단 제공

가을 문턱을 넘어서자 바다에 부는 저녁 바람이 제법 싸늘하다. 그럼에도 해안도로를 따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 없이 이어진다. 남항진부터 구름다리를 건너 석양을 등진 등대를 따라 안목항까지 바닷바람을 쐰 사람들의 발길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곳을 향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밝게 불을 밝혀 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커피전문점으로 들어선다.

커피해변으로 유명한 강원도 강릉 안목항 해변거리의 모습이다. 지금은 강릉항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커피 애호가들에겐 안목항이 아직은 더 익숙하다.

바다는 커피향을 더 진하게 만든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계절은 커피와 궁합이 가장 잘 맞는 계절이어서인지, 가을을 맞은 안목항은 여느 계절보다 더 북적거린다. 어느 테이블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누구는 홀로 진한 커피를 마시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안목항을 찾은 사람들은 이렇게 마음 한구석에 진한 추억을 하나씩 만들고 돌아간다. 강릉에서 활동중인 독일인 작가 유디트 크벤테론(43ㆍ여), 이희원(53)씨 부부는 “바다와 접한 안목항 커피숍은 유럽에 노천카페가 풍기는 분위기와는 또 다른 낭만이 있다”고 말했다.

안목항 커피거리는 강릉을 대표하는 명소다. ‘커피거리’로 불리는 이곳 안목항 거리엔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커피전문점들이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커피전문점만 30여 곳으로 어촌 해변임에도 활어횟집보다 커피점이 더 많다.

커피와 강릉. 얼핏 보면 오죽헌과 선교장 등 유교적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예향의 도시이며 관광의 도시인 강릉과 커피는 어울리지 않는 듯 하다.

그러나 강릉 강동면 남항진 한송정(寒松亭)이 우리나라 차(茶) 문화의 발생지였다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기록을 보면 그리 낯선 조합만도 아니다. 과거 신라 화랑들이 동해안의 정자에서 다도(茶道)를 배웠듯 요즘 사람들은 이곳 강릉에서 커피향에 빠진다. 오랜 전통차 문화가 21세기 들어 커피와 자연스레 연결된 셈이다. 그것도 안목항이란 아름다운 항구와 만나 커피는 새로운 문화상품이 됐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강릉 사투리처럼, 한 모금 넘기면 잠시 뒤 독특한 맛과 깊은 향이 느껴지는 커피는 공통점이 많다는 게 강릉 사람들의 얘기다.

변변한 상가 몇 개 없는 한적한 어촌 해변이었던 안목항은 2000년대 초반 커피 자판기가 늘어서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길 다방’라 불리는 안목항 자판기를 그저 그런 ‘믹스커피’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자판기마다 기계에 따라 콩가루를 넣기도 하고, 미숫가루가 들어가는 등 맛이 달랐다. 자판기 속에 ‘바리스타’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초에는 박이추씨 등 국내를 대표하는 커피명인들이 속속 안목항에 가게를 내면서부터 지금의 커피거리가 만들어졌다.

이곳 안목항에 가면 커피마니아가 아니라도 한번쯤 들어 봤음직한 매장인 커피커퍼, 카루소, 카페 이탈리코, 산토리니, 엘빈 등 이름난 커피숍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스타벅스와 할리스, 엔젤리너스 등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도 비집고 들어와 안목항 커피명인들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곳에선 흔한 다방커피를 비롯해 원두를 직접 볶는 로스팅 커피, 뜨거운 물을 내려서 만든 드립커피, 작은 기구에 커피를 채우고 열을 가해 뽑아 내리는 모카포트식, 직접 알코올 램프에 가열해 추출하는 사이폰식 커피, 유리 비커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더치커피 등 모든 맛을 즐길 수 있다.

커피는 객관화된 수치로 등급을 매기는데, 안목항 점포들은 80점 이상의 점수를 받는 ‘스페셜티’ 급 이상의 커피를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커피숍이 쓰는 원두 또한 케냐산 ‘피베리’에서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인 ‘아라비카 버본’, 콜롬비아 ‘게이샤’ 등 다양해 가게 마다 맛과 향이 조금씩 다르다. 커피와 함께 즐기는 수제케익과 파이, 쿠키 등 디저트 또한 일품이다. 커피애호가뿐 아니라 미식가들도 이곳 안목항을 자주 찾는 이유다. 커피 동호회원 홍준익(44)씨는 “커피점 한곳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가지고 이곳 저곳을 돌아보며 색다른 커피 맛을 비교해 느껴보는 것도 안목항을 찾는 재미”라고 말했다.

안목 해변의 커피 전문점은 대부분 2층 야외 테라스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 야외 테이블과 창가 테이블은 커피 맛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까지 더한 명당자리다. 때문에 휴일에는 명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손님들이 일찌감치 장사진을 치기도 한다는 게 업주들의 얘기다.

명당자리를 놓쳤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몇몇 매장의 경우 실내에서 바리스타가 직접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또 지중해 풍 건물에서 통나무 별장, 숲 속의 산장형까지 커피 전문점의 인테리어를 살펴보는 것도 이곳에서 얻는 색다른 재미다.

안목항의 커피는 강릉지역 경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안목항의 성공을 벤치마킹 해 정동진과 경포대에도 커피거리가 생기고 원두 가공업체가 늘면서 강릉지역 전체가 ‘커피특구’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 1990년대 연 1,500만 명에 이르던 강릉을 찾는 관광객이 2000년대 들어 300만 명 가량 줄었으나, 최근 커피가 지역브랜드로 떠오르면서 관광객 수가 다시 늘고 있다는 게 강릉시의 설명이다. 여행객이 증가하자 주변에는 숙박업소와 식당도 덩달아 늘고 있다. 활력을 잃었던 구도심에도 카페와 소극장이 문을 열면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커피로 인해 강릉이 ‘한철 휴가지’에서 ‘사계절 관광지’로 변모한 셈이다.

특히 강릉에는 최근 들어 안목항 등 커피 전문점이 밀집한 곳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이채로운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등 대도시의 경우 학원이 모여 있는 곳의 집값이 오르듯 말이다.

지역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안목항 중심지 땅값은 3.3㎡(평)당 600만원 가량으로 최근 5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경포 등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라는 게 부동산 업계의 설명이다. 이래저래 커피는 고마운 존재다. 허병관(55) 강릉시의원은 “커피전문점으로 인해 여름 휴가철 반짝 특수에 기대던 상권에 새로운 활력이 생겼다”며 “바다와 낭만, 천혜자연이 커피와 조화를 이뤄 매력 있는 관광상품이 됐다”고 밝게 웃었다.

강릉=박은성기자 esp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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