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에 으레 붙는 수식어가 ‘풍성한’이고 ‘넉넉한’이지만 실제로는 여유도 없고 더 바쁘다. 차례 음식준비로 몸과 맘이 고되고, 막히는 귀성·귀경길에 짜증과 피곤이 더한다. 다행히 대체휴일제가 처음으로 적용된 이번 추석엔 5일간의 연휴가 생겼다. 고향에서 혹은 오가는 길목에서 가족들과 짧은 나들이로 명절 피로를 풀어보는 것도 좋겠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추천하는 9월의 여행지를 소개한다.
남도 예술을 찾아가는 진도 여행
진도 여행은 진도대교를 건너며 시작된다. 해남과 진도 사이 명량해협은 정유재란(1597년) 때 이순신 장군이 13척으로 왜선 133척을 물리친 명량해전의 현장이다. 명량은 ‘소리 내어 우는 바다 길목’이란 뜻으로 우리말로는 ‘울돌목’이다. 다리 건너 오른편엔 이 충무공 동상이, 왼편엔 녹진광장과 진도타워가 반긴다. 7층 규모의 진도타워에선 진도대교와 울돌목이 한눈에 들어온다.
진도의 진면목은 ‘소리’에 있다. 강강술래, 남도들노래, 진도씻김굿, 진도다시래기 등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가 4종이고, 전남무형문화재도 5종에 이른다. 국립남도국악원은 금요일 오후 7시에 금요상설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관람은 무료다. 주말문화체험은 가족 단위로 매주 금·토요일 1박 2일간 진행한다. 공연 관람에 강강술래와 국악 배우기, 남도 문화체험이 포함된다.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선 남도들노래, 진도북놀이, 남도잡가 등으로 흥겨운‘토요민속여행’ 상설공연이 열린다. 진도문화체험장에선 매주 목~토요일 공연자와 관객이 어우러지는 색다른 공연이 펼쳐진다. 관람료 5,000원으로 진도특산물도 맛볼 수 있다.
운림산방, 소전미술관, 장전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서화 관람 여행도 괜찮다. 운림산방에선 남종화의 대가 허련 집안 5대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소전미술관은 서예계의 대가 손재형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장전미술관은 추사와 다산, 윤두서와 김은호 등 대가들의 국보급 작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온 가족이 떠나는 영화 같은 여행, 부산
‘영화 속 그곳’을 찾아 떠나는 촬영지 여행은 부산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영도구 흰여울문화마을은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불러 모은 ‘변호인’ 촬영지다. 송우석(송강호)이 골목 계단에 앉아 국밥 집 주인 순애(김영애)를 기다리는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흰여울문화마을은 절영해안산책로와 이어진다. 해안을 따라 조성된 3.2km 산책로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기 좋다.
중앙동 부산데파트는 영화 ‘도둑들’ 촬영지다. 극중 인물들이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혈투를 벌이던 장소다. 부산데파트는 부산 최초의 현대식 쇼핑센터로, 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이곳에서 10분쯤 걸으면 비프(BIFF)광장에 닿는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영화와 관련한 조형물이 곳곳에 있고, 거리의 먹거리 포장마차는 또 다른 명물이다.
용호동의 이기대도시자연공원도 단골 촬영지다. 도시와 바다가 어우러진 전망으로, ‘해운대’ ‘박수건달’ ‘깡철이’를 통해 부산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알렸다. 도로변 아래 해안 절벽을 따라 이기대해안산책로가 조성되었다. 산책로는 오륙도 스카이워크까지 이어진다. 35m 해안 절벽 위에 철제 빔을 놓고 방탄유리 24개를 이어 만든 스카이워크는 영화처럼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장소인 영화의전당에선 평시에도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열린다. 오후 8~11시엔 빅루프를 무대 삼아 황홀한 빛의 쇼가 펼쳐진다.
낙동강 생태 천국, 주남저수지와 우포늪
창원 주남저수지와 창녕 우포늪은 낙동강 물줄기와 이어진 생태 천국이다.
주남저수지는 1980년대 들어 가창오리 수만 마리가 찾기 시작하면서 저수지의 생태적 중요성이 재조명됐다. 9월이면 기러기류 선발대가 저수지를 찾는다. 가을이 깊어지면 노랑부리저어새, 재두루미, 큰고니 등 천연기념물과 멸종 위기종을 비롯해 수만 마리의 철새가 날아든다.
가장 편하게 감상하는 방법은 람사르문화관에서부터 생태 탐방로를 따라 걷는 것이다. 철새 탐조대와 연꽃단지가 조성돼 있다. 가을에는 주남 수문을 거쳐 저수지를 끼고 코스모스 길이 반긴다. 이른 아침에 찾으면 곳곳에서 물안개가 피어 오르고, 안개 사이로 물새가 날갯짓하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넓은 지역을 두루 둘러보려면 자전거를 이용하는 게 좋다. 초입에 자리한 생태학습관에서 자전거를 무료로 빌릴 수 있다.
우포늪은 국내 최대 자연 습지다. 늪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습지에 관한 국제협약인 람사르협약에 등록돼 보호받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우포늪, 사지포, 목포늪, 쪽지벌 등으로 나눠 부른다. 북쪽 목포의 장재마을은 왕버들 군락이 멋있다. 북단의 소목마을에는 장대 거룻배 풍경이 남아 있다. 새벽녘 배가 한가롭게 오가는 정경이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우포늪의 풍광은 새벽과 밤이다. 주변에 다른 빛이 없기 때문에 별빛이 유난히 또렷하다.
가을바람에 실려오는 문화의 향기, 충주 탄금대
탄금대는 남한강과 속리산에서 비롯된 달천이 어우러지는 합수머리에 봉긋하게 솟은 산 일대를 말한다. 우륵의 가야금 선율에 젖은 낭만적인 장소가 조선 시대에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였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이끄는 조선 군사와 왜군이 전투를 치른 곳이 바로 탄금대다. 바위 절벽이라 아찔한 열두대는 최근 데크로 전망대를 만들어 접근하기 쉽워졌다. 가야금 선율을 형상화한 탄금대교 야경을 감상하기에 최고 포인트다.
시비와 문인의 흔적을 찾아가는 문학 기행만으로도 충주 곳곳을 누빌 수 있다. 남한강 변의 목계나루에는 신경림의 ‘목계장터’ 시비가 있고, 삼탄유원지에는 정은택의 ‘삼탄강’ 시비, 종합운동장에는 박재륜의 ‘남한강’ 시비가 남아 있다. 충주에서 말년을 보낸 이오덕의 ‘새와 산’ 시비는 신니면 김재옥교사기념관에서 볼 수 있다.
충주는 교통의 요지라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의 유물이 고루 분포돼 있다. 탑평리 칠층석탑은 높이 14.5m로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탑 가운데 가장 높다. 탑이 강물에 잠기는 걸 막고, 배에서도 보게 하려고 탑 아래 흙더미를 만들어 더 높아 보인다. 국토의 중앙에 조성했기 때문에 중앙탑이라고 부른다.
계명산 줄기인 심항산 둘레를 따라 호수 풍경을 즐길 수 있게 조성된 종댕이길은 충주의 새로운 명소다. 푸른 충주호를 끼고 산을 한 바퀴 도는데 느린 걸음으로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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