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차협력금제 연기하고 탄소배출권거래제 대폭 완화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던 저탄소차협력금제를 결국 2020년 말까지 연기하기로 했다. 또 탄소배출권거래제는 예정대로 내년부터 시행하되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의 핵심 정책들이 대거 후퇴하면서 야당과 시민단체는 “당장 이익에 눈이 먼 산업계의 요구에 정부 정책과 법 질서가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0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저탄소차협력금제의 시행 시기를 6년 뒤로 연기하는 내용 등을 담은 배출권거래제 및 저탄소협력금제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저탄소차협력금제는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이 많은 중ㆍ대형 차량 소비자에게 부담금을 부과하고 이를 경차나 친환경차 소비자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에 따라 지난해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자동차업계의 반발로 시행 시기가 2015년으로 늦춰졌었다. 자동차업계는 소비자의 구매 유인 효과를 떨어뜨린다며 제도를 반대해 왔다. 그런데 또 2020년 말로 연기되면서 제도 자체의 시행 여부가 불투명해졌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배출권거래제와 저탄소차협력금제를 동시에 실시하면 국내 산업에 지나친 부담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 저탄소차협력금제 시행 효과를 분석한 결과,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크지 않은 반면 소비자와 산업에 미치는 부작용이 매우 컸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다만 이를 대신해 내년부터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에 대한 세제감면을 3년 연장하는 등 재정 지원을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또 2020년까지 자동차 평균 온실가스·연비 기준을 현재 140g/㎞에서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 수준인 97g/㎞로 강화하기로 했다.
업체별로 탄소배출권을 할당한 뒤 기업들이 잔여분과 초과분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배출권거래제는 내년부터 시행하되 감축률을 완화해 산업계 부담을 줄여줬다. 올해 1월 발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과 비교해 모든 업종에서 감축률을 10% 완화하고, 과징금 부담 해소를 위해 배출권 거래 기준가격을 톤당 1만원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에너지시민회의와 한국환경회의에 따르면 업체들이 2017년까지 할당받은 총 배출량은 16억8,700만톤인데 이는 당초 환경부가 제시했던 배출량보다 5,800만톤이 많다. 배출량이 늘어나면서 기업들이 굳이 배출권을 사고 팔 필요가 없어져 사실상 제도의 실효성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때문에 환경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2009년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정 당시부터 공론화돼 2012년 말에 자동차업계와도 합의가 끝난 사안을 시행 4개월 앞두고 정부가 업계 로비에 밀려 법 집행을 포기한 것”이라며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정부가 늘려준 5,800만톤은 2017년까지 산업계 전체가 감축하기로 한 양의 48%로, 산업계 감축량 책임 절반을 다음 정권에 넘긴 셈”이라고 꼬집었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동차업계는 국산차에서 거둬들인 부담금을 독일이나 일본에서 수입하는 차에 보조금으로 줘 국내 자동차산업이 역차별 당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다만 수혜가 예상됐던 일부 업체는 아쉬워했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연료 효율성을 높이는 등 친환경 디젤차나 전기차 개발에 앞장서왔는데 제도 시행이 유예된 데 대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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