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사망사건을 수사 중인 3군사령부 검찰부가 가해 병사 4명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3군사 검찰부는 “사건 당일 윤 일병이 많은 이상징후를 보인 사실을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구타를 했고, 의무병으로서 사망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적용 배경을 설명했다.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판단은 처음 이 사건을 수사한 28사단 검찰부의 상해치사죄 적용을 뒤집은 것이다. 군의 최초 수사에 문제가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윤 일병이 쓰러진 4월 6일 헌병 수사관은 가해 사병들의 진술서만 받고 별다른 조치 없이 철수했다. 윤 일병의 신체 상태를 직접 확인했다면 심각한 구타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던 상황이다. 그 사이 가해 사병들은 윤 일병에 대한 가혹행위를 목격한 김모 일병에게 “제발 조용히 해달라. 이건 살인죄다”며 입막음 시도를 했다. 다음날 가해 사병들을 소환했으나 미필적 고의 등은 조사하지 않았다.
군 검찰도 이 조사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세 차례 진행된 공판에서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미리 설정한 결론에 따라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죽했으면 가해 사병 변호사가 주범에 대해 살인죄 적용을 주장하는 일까지 벌어졌겠는가. 이런데도 군 검찰의 핵심 지위에 있는 육군 법무실장은 “윤 일병 폭행, 가혹행위,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완벽하게 처리했다”고 엉뚱한 말을 했다. 결국 시민단체인 군 인권센터가 잔혹한 가혹행위 실상을 폭로하자 뒤늦게 재수사에 나서 살인죄 적용 근거를 찾아냈다.
윤 일병 사건은 우리 군의 후진적인 병영문화와 인권의식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유력 언론들조차 윤 일병 사건을 상세히 전하며 한국 군대문화의 근본적 수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런데도 군 당국은 여전히 근본적 개혁을 외면하고 있다. 일반부대 병사의 평일 면회와 계급별 공용휴대전화 운영 등 병영문화 혁신안을 발표했지만 땜질처방에 불과하다. 외부 전문가들이 핵심적인 개혁 방안으로 제시한 군 옴부즈맨 운영과 군 사법제도 개선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부하고 있다. 군이 지휘관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과거 대형사고가 나면 얼렁뚱땅 대책을 내놓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했던 전례가 되풀이되는 듯하다. 군이 이번에 제대로 된 개혁안을 내놓지 못하면 ‘국민의 군대’라는 신뢰와 지지를 더 이상 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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