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새누리당이 어제 당정협의에서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5.5% 늘어난 375조원 내외로 책정했다. 이는 작년 대비 올해 예산 증가율 4%보다 1%포인트, 정부가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 제시한 연평균 증액률 3.5%보다 무려 2%포인트 높은 팽창예산이다. 당정의 팽창예산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재정ㆍ금융ㆍ세제를 망라한 강력한 경제활성화 대책을 추진하면서 일찍이 예고됐다. 최 부총리는 취임 직후인 지난 7월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당분간 재정건전성에 신경 쓰지 않겠다”며 확장적 재정정책을 선언했다.
극심한 내수 부진에 따라 일본식 장기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가 우려되는 상황을 감안할 때 과감한 재정정책은 마땅히 시도할 만하다. 하지만 세수가 부족한 가운데 예산이 팽창하면 적자 국채 발행 등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최 부총리는 그런 우려에 대해 “경제를 살려 세수가 늘면 이번 경기부양에 쓴 국가채무는 박근혜 정부 임기 전까지 갚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2009년(3.8%)을 제외하곤 최근 10년간 줄곧 1%대에 머문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35%대인 일반 정부부채 수준 등 비교적 건전한 재정상황은 일시적 팽창예산을 허용할 수 있는 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세수가 뒷받침 되지 않는 팽창예산은 빚 내서 사업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손 쉽게 빚을 끌어다 쓴 정권은 ‘사업’이 실패해도 임기가 끝나면 그만이지만, 채무 부담은 미래세대에게 고스란히 넘어간다. 이번 팽창예산이 그대로 편성될 경우, 당정이 예상한 경상성장률 6%가 달성돼도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은 단숨에 2%대로 뛰고, 그 여파로 당초 2017년을 목표로 했던 균형재정 달성은 또 다시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정은 예산 팽창 분의 일부는 전체 예산의 30%를 넘어설 보건복지 분야와 올해 대비 13% 가까이 늘어나는 안전 분야에 충당하는데 쓰고, 나머지를 일자리 창출 및 지역 예산, 창조경제 예산과 소상공인 등 서민층 지원에 집중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야당은 내년도 예산안의 최대 문제점을 재정건전성 악화에 두고 철저히 시비를 가린다는 입장이어서 팽창예산의 국회 통과는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다. 당정은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불식하는 차원에서라도 내년도 예산안과 함께 준비할 새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 신뢰할 만한 재정 연착륙 계획을 반드시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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