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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낙서를 보니... 청춘이 웃프다

입력
2014.09.0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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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대학생. 4년째 노동자. 모아놓은 돈은 없음… /날고 싶다. 훨훨/답을 찾아줘/억울하고 슬픈 일 다 지나간다. 힘내라!!”

학점, 등록금, 알바, 연애, 취업준비… 바쁘고 피곤한 청춘은 오늘도 탈출을 꿈꾼다. 구구절절 낙서장에 밴 고뇌와 눈물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항거의 표시인지도 모른다. 낙서는 혼자만의 비밀을 고백하고 고민도 털어 놓을 수 있는 맘 좋은 친구다. 아프다며 징징대고 나면 마음도 후련해진다. 남의 낙서에서 발견한 내 고민거리가 왠지 반가운, 대학가 낙서는 그래서 젊은이의, 젊은 날의 초상이다.

경희대,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주변 카페나 주점에 적힌 낙서를 살펴봤더니 사랑과 진로, 학업, 군대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각각의 사연을 촬영해 주제별로 모은 이미지를 빔 프로젝터로 스크린에 투사했다.

인류가 낙서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이 써 온 사랑 이야기. 사랑을 빼놓고서 젊은 날의 고민과 아픔을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류가 낙서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이 써 온 사랑 이야기. 사랑을 빼놓고서 젊은 날의 고민과 아픔을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 남친(여친)이 없어?” 주위에서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나도 이성친구를 사귀고는 싶지만 맘처럼 쉽지 않다. “나의 짝을 찾아줘^^/여친~ 생기게 해주세요/에휴 꼭 남친 만들 꺼다. 4년 안에.. /나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남자 만나고 싶다..”

근데 원래 사랑이란 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잖아. 일단 시작하고 나면 그 대가도 만만치 않다고. “나.. 너 좋아해. 그거 알아? 몰라? 너 땜에 많이 행복하고 또 많이 힘들어…ㅠ/가을밤 잠 못 드는 사랑 준 사람, 짧게 웃고 길게 우는 사랑 준 사람/참 많이 보고 싶다”

어느새 이별이… 오늘도 수 많은 커플이 헤어진다. 나도 쿨하게 헤어졌다. 그런데 문득 마음 한 구석이 아려 온다. “그 사람을 놓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마음이 아프다. 고마웠고.. 미안하고../자꾸만 코끝이 찡해져 눈물이 고인다. 너무나도 잘 맞았던 사람.. 손금까지 닮았던 우리.. 오늘.. 모든 추억들.. 다 두고 갑니다..”

언제부턴가 취업이 졸업을 앞 둔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 거리로 자리 잡았다. 취직과 성공은 과연 하나일까>
언제부턴가 취업이 졸업을 앞 둔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 거리로 자리 잡았다. 취직과 성공은 과연 하나일까>

뭘 해먹고 살지? 가뜩이나 먹고 살 궁리에 골이 아픈데 취업문까지 가혹할 정도로 좁다. “빨리, 좋은 곳에 취직이 됐으면 좋겠다. 열심히 나름대로 살아오고 공부한 것 같은데 왜 몇 년째 부모님께 속상함을 드리는 딸인 건지/더욱 힘내서 꼬옥 취업 성공해야겠다!!/시험 붙게 해주세요 제발!!!!”

취직을 목표로 죽기살기로 노력하는 친구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고민들이 의외로 넘친다. “정작 졸업이 가까워지니 더욱 모르겠다. 무슨 길을 택해야 하는지 답답하다/누가 꿈에라도 나와서 답을 줬음 좋겠다/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정작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얼 잘하는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꿈은 분명하게 있는데, 두려운 것인지 쉽게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래도, “조금만 더 하면, 언젠가는 나의 때가 올 거야/꿈은 꼭 이뤄야만 빛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 꿈을 꾸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

알바에 취업준비에 스펙관리에... 바쁜 와중에도 절대 실패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학점관리. 올A+를 꿈꾸며 오늘도 달린다.
알바에 취업준비에 스펙관리에... 바쁜 와중에도 절대 실패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학점관리. 올A+를 꿈꾸며 오늘도 달린다.

자전거타기, 책읽기, 신문보기 같은 일상생활이 ‘종강 후 하고 싶은 일’리스트에 올라 있다. 여행마저도 스펙의 일부일 정도니 학점에 대한 중압감은 오죽하겠나. 지칠 대로 지친 청춘들의 소리 없는 절규가 눈물겹다. “으아아 시험공부 하기 시러어어어어/시험아.. 우리 그만 만나/니네 기말은 안녕들 하시냐?/이번 학기 진짜 너무X3 힘들다 ㅠ ㅠ 중도휴학!!! 하고 싶지만… 죽겠지만.. 나를 스트레스 받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 끝까지 힘 내야징”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한 달 내내 알바를 뛰다 보니 강의시간에 졸기 일수다. 성적도 잘 나올 리 없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파이팅을 외쳐준다. “중간고사 파이팅! 이번엔 학점거지 되지 말자^^/너도나도 파이팅. 열공하고 있으니까 제발 A+ 투성이 성적표좀~/화남. 내 성적도 화남. 시험지 다 찢어버릴거야. 스카이다이빙 하고 싶다. ㅠ 오늘 또 밤 새야해.. 화나.. 아../교수님 졸업만 시켜주세요”

군대 자체가 고민이다. 도대체 왜, 왜, 왜! 나는 군대 가야 하는 건가? 해답 없는 질문만 마구 던지는 슬픈 우리 젊은날이여.
군대 자체가 고민이다. 도대체 왜, 왜, 왜! 나는 군대 가야 하는 건가? 해답 없는 질문만 마구 던지는 슬픈 우리 젊은날이여.

가기 싫다고 떼를 써 본다. 가혹행위, 관심 사병, 폭행, 임병장, 윤일병… 요즘 군대 시끄러워서 약간 두려운 마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러려니’ 하며 입대한다. 떠나는 당사자보다 보내는 친구들의 걱정이 더 크다. 카투사나 의경으로 가면 좀 낫다는데… “나는 내일 군대간다. Say Goodye/영수야! 군대 잘 다녀 오구 다치지마. 잘 기다리고 있을게/현구야 선임한테 맞지 말고.. 행복해야해 ㅠ-ㅠ흑”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힘든 일도 잊혀지는 법. 입대 후 원하는 건 그저 한 가지. 국방부 시계야 빨리 가라. 휴가 때만 빼고… “미필이 ㅜ_ㅜ 군필이 짱이야 Good ㅋㅋㅋ/복귀하기 싫오…ㅜㅜ/ 언제 전역하노? 드디어 14일 남아따!”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이재림 인턴기자(경희대 경영학과 3)

강다연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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