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中 행위예술 선구자...20년 작품세계 학고재서 개인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자가 반쯤 잠든 채로 의자에 앉아 있다. 관객들이 하나씩 나와 그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남자의 몸을 만지기도 하고 옷으로 가려주거나 특정 부위를 유심히 들여보는 등 저마다 다양한 행동으로 관객들이 완성하는 이 퍼포먼스는 중국 작가 마류밍(45)이 1998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선보인 작품 ‘펀ㆍ마류밍’이다. 한국에서는 2000년 광주비엔날레에서 했다.
서울 학고재갤러리에서 2일 시작한 마류밍 개인전은 그를 유명하게 만든 1990년대 나체 퍼포먼스의 사진과 영상부터 최근의 그림과 조각까지 20여 년간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그림 23점을 포함해 48점이 나왔다. 한국에서 마류밍은 2000년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처음 소개됐다. 개인전은 2006년 서울의 아트사이드 갤러리 전시 이후 두 번째다.
마류밍은 화가이면서 중국 행위예술의 선구자다. 베이징 외곽의 동촌에 실험미술 공동체를 만들어 활동하던 1994년 야외에서 완전 나체로 요리 퍼포먼스를 했다가 두 달 간 감옥 신세를 졌다. 그때부터 10년 간 ‘펀ㆍ마류밍’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처럼 화장을 한 채 나체 퍼포먼스를 했다. 당시 그는 얼굴만 보면 여자인 줄 알만큼 예뻤다. 여자 얼굴을 한 남자의 나체 퍼포먼스로 ‘신체의 해방’을 외쳐 충격을 던졌다. 산꼭대기에서 작가 9명이 나체로 몸을 포개 해발고도를 1m 높인 퍼포먼스(‘1m 끌어올려진 익명의 산’ㆍ1995)는 중국 현대미술사의 최고 명장면으로 꼽힌다.
‘펀ㆍ마류밍’은 그의 또다른 자아다. 중국 여성 이름에 많이 쓰는 ‘향기로울 분(芬)’과 ‘나눌 분(分)’의 중국어 발음 ‘펀’을 이름 앞에 붙였다. ‘그녀’ 펀ㆍ마류밍은 2004년 떠났다. 더 이상 나이 들기 전에 그녀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동결시키고자 이별했다. 이후 퍼포먼스는 그만두고 그림에 주력하고 있다.
‘화가’ 마류밍의 근작은 과거 퍼포먼스의 연장선에 있다. 퍼포먼스에 참여한 관객들의 기념사진을 그림으로 옮겨 기억을 보존했다. 작가는 흐릿하고 관객의 모습만 부각시켜 그렸다. 성글게 짠 모기장 같은 캔버스 뒤편에서 물감을 쥐어짜 망 틈으로 밀려나오게 하는 기법을 써서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냈다.
2004년 아들이 태어난 뒤에 시작한 ‘아기’ 시리즈는 자신의 얼굴에 아기 몸을 그렸다. 그에게 아들은 퍼포먼스의 주인공이었던 펀ㆍ마류밍에 이은 두 번째 분신이다. 합성수지 소재로 만든 새하얀 조각작품 ‘아기’ 시리즈를 함께 선보이고 있다.
아들의 얼굴을 커튼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처럼 좁고 길게 왜곡해서 그린 작품도 나왔다. 얼핏 보면 검은 화면 가운데에 날카로운 색면이 서있는 추상회화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이목구비를 갖춘 어린아이 얼굴이다.
과거 펀ㆍ마류밍 퍼포먼스부터 최근의 회화와 조각까지 그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 남성과 여성, 아기와 어른 등 대조적인 특성을 병치함으로써 모호함과 다양성을 구현하고 있다. 전시는 10월 5일까지 한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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