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등장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
한물간 스타 이벤트로는 고립 못 벗어
정상회담 등으로 적극 이끌어 내야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열풍이 평양에도 등장했다. 1일 각 신문에는 미국 유명 래퍼 프라스 미셸이 전날 평양 대동강변에서 얼음물을 뒤집어 쓰는 장면이 실렸다. 미국 3인조 힙합그룹 ‘푸지스’의 멤버인 미셸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친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달 30, 31일 평양의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국제 프로레슬링경기와 무술시범 등을 보기 위해 북한을 방문 중이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 땅에서 루게릭 병 환자를 돕기 위한 전지구적 연대 캠페인인 얼음물 세례가 등장한 것은 지구촌의 화제가 될 만하다. 외국 언론에 따르면 미셸은 “평양은 아직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열풍이 알려지지 않아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하기에) 완벽한 장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갑자기 얼음물을 뒤집어 쓰자 주변에 있던 평양 주민들은 깜짝 놀라거나 웃는 반응을 보였다고 외국 언론은 전했다.
미셸의 평양 방문은 두 번째다. 6개월 전에도 미국 프로농구(NBA) 스타였던 로드 먼 일행으로 평양을 찾은 적이 있다. 그가 이번에 관람한 국제 레슬링경기에는 미국의 프로미식축구(NFL) 선수였던 밥 샙 등 세계적인 이종격투기 선수들도 출전했다. 외국 언론들이 관심을 기울일 만한 요소가 적지 않았다.
이런 뉴스들을 접하다 보면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고립되고 폐쇄적인 나라라는 사실을 은연중 잊는다. 김정은 정권이 로드 먼이나 이번 국제레슬링경기를 북한측과 공동 주최한 일본의 전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 등을 뻔질나게 불러 들이는 이유가 바로 이런 효과일지 모른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김정은식 고립 탈출법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그가 처한 외교적 고립의 현실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그는 권력을 공식 승계한 지 2년8개월이 지나도록 주요국 정상과 공식회담 한 번 갖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몽골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이 3박4일 일정으로 방북했을 때도 정상회담은 없었다.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이 김일성대학 강연에서 “폭정은 영원할 수 없다”며 일당독재를 비판하는 바람에 김정은이 만나주지 않았다는 설도 있었고, 첫 외국정상과의 회담을 주요국 정상과 갖기 위해 일부러 피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어떤 이유에서든 김정은이 국제 외교무대에 공식 데뷔하지 못하는 상태가 3년 가까이 이어지는 건 정상이 아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최대 우방인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가장 먼저 원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시진핑은 그런 기대를 외면하고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 평양보다 서울 방문을 먼저 택했다.
최근 북중관계가 소원한 틈을 타 북한과 러시아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고, 납치자 문제 해결을 고리로 한 북한과 일본의 접근 속도가 심상치 않다. 요동치고 있는 동북아 정세가 북한을 가운데 놓고 주요국 간 미묘한 경쟁을 부추기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8월 중순 미 정부 당국자들이 군용기를 타고 평양을 극비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데 이어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24일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키로 했다. 북한 외무상의 유엔총회 방문은 15년 만이다. 미 백악관은 현행 대북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다고 차단 막을 쳤지만 물밑에서 어떤 움직임이 진행 중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김정은이 공식 외교무대에 나서지 않는다면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는 아내를 공식석상에 동행하는 등 아버지나 할아버지 시대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왔다. 특별열차를 이용한 외국방문을 고집한 아버지와는 달리 전용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를 초청만 하면 곧바로 날아갈 수 있다는 사인을 외부 세계에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때가 무르익은 것은 아닐까.
우리 정부는 최근 북한을 둘러싼 미묘한 정세변화와 주요국들의 움직임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5ㆍ24조치의 전향적 검토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는 보도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흐름을 따라가는 정도의 소극적 자세로는 판을 주도하기 어렵다. 국제무대로 김정은을 이끌어 내기 위한 박근혜 정부의 과감한 정책 결단이 아쉽다.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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