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유식과의 전쟁… 모든 끼니는 파도처럼 밀려왔다

입력
2014.09.01 13:58
0 0

나도 휴직 전에는 몰랐던 게 하나 있다. 아들이 밥을 그렇게 안 먹는다는 거다. 애 밥 먹이는 일이 전쟁이다 보니 적지 않은 육아 스트레스가 이유식에서 생긴다. 보통 휴직 아빠들이 첫돌 전후 또는 엄마의 복직과 함께 모유 수유 종료 때 바통터치하게 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유식이 차지하는 업무비중은 막대하다.

무슨 대수냐 싶었는데, 먹이는 일은 놀아주는 일과 차원이 달랐다. 아빠가 피곤해서 하루 이틀 부실(?)하게 놀아줘도 크게 문제 될 것 없지만, 폭풍 성장기의 아들이 하루 이틀 제대로 못 먹으면 당장 티가 난다. 때에 맞춰 충분히 먹지 못하면 중간에 주전부리를 찾고, 이러면 또 밥을 안 먹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악순환도 이런 악순환이 없다. 제때 덜 먹으면 조금씩 자주 먹게 되고, 이렇다 보니 한밤에 잠을 길게 못 잔다. (한번은 아들이 새벽 1시에 깼는데 압력솥으로 밥을 해서 온 식구가 배를 채운 다음 다시 잠을 청한 적도 있다.) 적게 먹어서 밤중에 자주 깨니 엄마아빠가 피곤해지는 건 당연한데, 이건 일도 아니다. 조금씩 먹는(잘 안 먹는) 게 반복되면 결국 변비에 걸리게 되고 이러면 병원 가서 약을 타 먹이고(무슨 약인지 모르지만 잘 먹어서 다행이더라. 하긴 이마저 사약 먹이는 수준으로 먹여야 한다면 말이 안 되겠지.) 또 이게 안 먹히면 ‘똥꾸빵꾸’약을 써야 한다. (여하튼! 이유식을 잘 먹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거다.)

아빠가 대충 해낸 이유식은 쳐다보지도 않고 주물럭거리는 아들. 입으로 가져가는 게 있긴 하지만 반도 채 안 된다. 억지로 먹이자 화가 난 아들은 그 달콤한 후식마저 뿌리친다. 단언컨대, 기분 좋게 먹이는 게 최고의 육아 기술이다.
아빠가 대충 해낸 이유식은 쳐다보지도 않고 주물럭거리는 아들. 입으로 가져가는 게 있긴 하지만 반도 채 안 된다. 억지로 먹이자 화가 난 아들은 그 달콤한 후식마저 뿌리친다. 단언컨대, 기분 좋게 먹이는 게 최고의 육아 기술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실을 안 것은 최근. 아들이 이유식을 잘 먹으려면 맛나게 만들어야 할 텐데 실력이 따라주질 않으니 후회막심이다. (요리학원 이런 거 절대 아니다. 애 엄마 이유식 만들 때 주방보조라도 하면서 좀 배워둘 걸…, 하는 후회.) 벼락치기로라도 책을 놓고 배울 수밖에 없었다. 제목도 참 잘 붙인, 아빠 눈에 콱 들어오는 ‘아이들이 잘 먹는…’ 어쩌고 저쩌고 하는 요리책을 펼쳐 들었는데, 눈앞이 깜깜하다. 알레르기 아토피 감기 변비 설사 빈혈 등등을 예방 이유식, 혈당 상승 지수가 낮은 양념 고르는 법 등등. ‘배만 부르면 되지’하는 생각에 철퇴를 놓는 수준이다. 아들용 식자재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불만을 표시하고 있던 터에,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식자재와 조리연장으로 아들용 식사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 일이 쉬울 리 없었고 이 현실은 대단히 못마땅했다.

하지만 다른 도리는 없었다. 아들은 대충대충 만든 요리를 귀신같이 알아보곤 아빠나 먹어! 하는 수준으로 거절하는 힘도 세졌고, 고개가 빠지도록 가로젓는 수준이어서 억지로 먹이는 건 불가능하다. 하는 수 없이 책 속 선생님을 따라 하지만 쉽지 않다. (참고로 이 아빠의 요리 실력은 라면 수준급, 미역국 먹어줄만한 급, 밥은 욕 안 들을 급.)

밥 때는 또 어찌나 빨리 찾아오는지. 하루 세끼 중에서도 제일 힘든 건 점심을 먹이는 일이다. 아침을 먹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또 먹이니 싫을 수밖에. (그 서너 시간 중에서도 1시간은 오전 낮잠이다.) 여기에 ‘메인 요리(?)로 장난치는 시간이 많아져서(말리려고 했는데 육아 전문가들은 이게 오감발달, 자존감 성형에 좋다며 그냥 두라 하신다!) 버리는 게 반이 넘다 보니, 또 요즘 아들을 부쩍 체중계에 자주 갖다 올리는 아내 생각이 나서 좋아하는 바나나를 거부할 때까지 먹인다. (그래 봤자 한 두 개인데, 어찌나 잘 먹는지 저러다가 아들이 원숭이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될 때가 가끔 있다.)

그 책과 씨름하면서 또 블로거들을 따라 이유식 만들면서 가진 생각 중 하나는 음식들이 왜 이렇게 휘황찬란한 걸까, 하는 것이다. 든 것도 몇 가지 안 되는데 웬만한 호텔 요리 수준 이상이다. 사진을 잘 찍어서 그런 건지, 그릇이 예뻐 그런지…. 물론 보기 좋은 떡이 맛도 더 나겠지만 감히 흉내 내기 힘든 모양들을 하고 있다. 손 큰 육아 아빠들을 위한 초간단 이유식, ‘보기와 달리 잘 먹는 이유식’ 정도의 책이 나오면 잘 팔릴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육아 선배는 “나쁘지 않은 아이템”이라며 이유식 팁 하나를 줬다.“소금을 넣어봐. ‘마법의 가루’라는 말이 어울릴 거야.” 간은 아내가 이유식 요리를 위임하면서 제시한 가이드라인 몇 가지 중 최상위 항목.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하지 말라는 절대금지 사항이다. 철저준수를 다짐했지만 식사전쟁을 치르면서 지친 아빠 마음이 약해지고 있다. ‘밥을 안 먹는 것보단 낫겠지?’ msj@hk.co.kr

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 모아보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