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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보신' 질책에… 위험 대출 늘리는 은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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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보신' 질책에… 위험 대출 늘리는 은행권

입력
2014.09.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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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겨자먹기 식 中企대출 확대… 건전성 강조 세계적 추세엔 역행

서울 세종로 금융위원회 6층 글로벌금융과 직원들은 작년 12월부터 국내 은행권에 적용되기 시작한 바젤Ⅲ 규제 시행상황 점검에 여념이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 규제강화 흐름에 따라 이전보다 은행의 자기자본은 더 늘리고 위험성 높은 대출은 줄이는 게 핵심이다.

같은 층 금융정책과와 은행과에서는 요즘 은행에 중기대출을 과감히 늘릴 것을 독려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창조ㆍ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해서다. 중기 대출은 잘만 되면 수익이 크지만 자칫 돈을 떼일 염려도 높아 통상 은행권에서는 대기업이나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위험자산으로 취급된다. 같은 부처 안에서 한쪽은 글로벌 흐름을 따라 위험자산 축소를 모니터링하고 다른 쪽에선 위험자산 확대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관련기사 보기)

박 대통령의 “금융 보신주의 타파” 선언 이후 관계부처들이 앞다투어 은행권에 적극적인 ‘모험 대출’을 독려하면서 지나친 몰아치기 식 행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권의 오랜 보신 문화 타파라는 명분은 좋지만 태생적으로 안전을 우선시해야 하는 은행권에만 과도한 요구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 글로벌 트렌드와도 상반되는 시책이 또 하나의 반짝 캠페인에 그칠 수 있다는 염려도 많다. 전문가들은 정교한 대출 심사 인프라 구축과 함께 전 금융권에 걸친 종합적인 대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이어진 박 대통령의 수 차례 금융 보신주의 질타 이후 금융당국의 드라이브 속에 시중은행들은 중기대출 늘리기에 잰 걸음을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은 재빠르게 조직 개편을 통해 기술금융팀을 만들었지만 아직 전문가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 최근엔 전 경영진이 중기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신한은행은 올해 기업대출 목표액 중 90% 가량을 중소기업에 할당했고 우리은행은 우리창조기업 파트너론 같은 관련 상품을 잇따라 출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자신감과 달리 은행 내부에선 제대로 된 중기ㆍ신용대출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많다. 먼저 심사 인력을 제대로 갖추는 게 필수지만 은행 내부의 전문가 양성은 물론, 당장 외부 전문가 수혈도 만만찮다는 것이다.

세계적 추세에 맞춰 건전성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론 위험대출을 늘리라는 주문도 결국 일선에서 저항에 부딪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무리 당국의 직접 제재를 없애도 결국 자기 책임으로 돌아올 모험 대출에 누가 과감히 나서겠느냐는 것이다.

주로 은행권을 타깃으로 한 최근 정책 방향에도 문제가 제기된다. 정작 기술금융을 주도해야 할 벤처캐피탈 업계의 보신주의나 보증기관의 낡은 연대보증 관행은 손대지 않은 채 은행 때리기에만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당국의 압박으로 늘리는 모험대출은 수년 후 거대한 부실로 돌아오고 또 다른 ‘정치 금융’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며 “금융 업권별 성격에 맞는 보다 정교하고 장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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