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로 구성한 '50인의 사람들' 49번째는 박영진 열사 가상인터뷰
이름없이 스러져간 노동자 기려...50번째 인터뷰는 빈 공간으로 남겨
27일 서울 구로구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에서 만난 안치용(49) 관장은 “지난 50년을 기억하고 기념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의 50년을 모색하고자 이 책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 관장은 최근 ‘구로공단에서 G밸리로-서울디지털산업단지 50년 50인의 사람들’이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구로공단(현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조성 50주년을 맞아 구로공단과 인연이 있는 노동자, 기업인, 정치인, 작가 등 50인의 이야기를 엮었다. 지속가능 청년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 5명과 함께 지난 10월부터 작업을 시작해 휴일도 없이 꼬박 3개월이 걸렸다. 28일에는 G밸리 기업시민청에서 구로공단 관련 기업가와 노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소박한 출판기념회도 열었다.
안 관장과 ‘바람’의 대학생 기자들은 인물선정부터 인터뷰 및 동영상 채록, 원고 수정과 발간에 이르기까지 함께 했다. 대학생들을 참여시킨 데 대해 안 관장은 “20대 초ㆍ중반 젊은이들은 금천ㆍ구로구 일대를 다양한 프랜차이즈 카페와 화려한 술집이 들어선 ‘디지털 산업단지’로 기억한다”며 “이들의 시선으로 굴뚝이 늘어서 있던 ‘구로공단’의 과거 50년을 조명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는 심한 문법적 오류나 이해하기 힘든 구절을 제외하고는 되도록 녹취록 원본을 그대로 담았다. 사실 작업은 올해 2월 거의 마무리됐지만, 6ㆍ4 지방선거 등으로 인해 출판 일정이 늦어졌다.
공단 조성 50주년을 기념해 50명의 인사를 선정했다지만 실제로 진행된 인터뷰는 48편이다. 49번째 자리에는 고 박영진 열사의 가상 인터뷰를 실었다. 안 관장은 “1970년대 청계천에 전태일 열사가 있었다면, 80년대 구로공단에는 박영진 열사가 있었다”며 “구로공단 노동운동의 허브였던 박 열사의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영혼 인터뷰 방식으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50번째 인터뷰는 ‘그 밖의 많은 공헌자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취지에서 빈 자리로 남겨뒀다. “비록 50명 안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이들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도 이름 없이 스러져간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배려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50명 선정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 추천을 받고 심사숙고 해서 결정했지만 늘 ‘그것이 최선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안 관장은 “이 책에 등장하는 50인의 대표성은 확고하지 않다”며 “다만 다양한 의견과 입장을 반영해 ‘최적의 인물’을 찾으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구로공단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보는 수많은 ‘눈들’에 묘미가 있다. 등장하는 50인은 각자의 관점으로 구로공단이라는 시공(時空)을 설명하는데, 가리봉 오거리, 지린내 나는 벌집, 아파트형 공장 등 다양하다. 안 관장은 “하나의 현상을 놓고도 50인이 각자 상반된 해석을 내놓아 혼란을 준다”며 “이 혼란이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라고 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구로공단 산업박물관 건립이다. 쪽방 등 현재의 생활 체험을 확대한 형태로, 공장, 기숙사 등 산업화 시대의 노동현장까지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단순히 상설 전시회장이 아닌, 우리 역사의 흔적을 보전하는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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