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통신비와 이동통신시장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선거철이나 새 정부가 들어서고 관련 부처 수장이 바뀔 때마다 늘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박근혜 정부 역시 7월 24일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에서 “가계통신비 부담 경감을 위해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취임사에서 “수요자와 소비자 입장에서 통신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소비자의 편익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통신시장을 혁신하겠다”고 정책 방향을 밝혔다.
이통시장은 기술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고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대표적 시장이다. 따라서 정태적 효율성보다 투자와 혁신을 통한 동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소비자 후생을 극대화하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신기술 도입 및 투자 촉진을 지속적으로 유도해 왔으며, 현 정부도 5세대 이동통신, 기가인터넷 등 기술혁신을 통한 효율성 추구를 정책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은 지난 30년간 괄목할만한 외형적 성장을 이뤘지만 반면에 이동통신 3사의 점유율은 5:3:2인 과점 시장구조의 고착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에서도 국내 이통시장은 다른 국가에 비해 독점적 지배력의 고착화가 심화돼 있으며 이로 인해 산업 활력 또한 저조한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통신서비스는 가입자가 많을수록 서비스 제공 비용이 감소하는 망 외부성을 갖고 있어서 시장 점유율이 큰 지배적 사업자가 지니는 비용 우위는 경쟁에 있어서 유리한 지위를 지속 가능하게 해주는 근본적 이유가 된다. 특정 사업자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그것이 기술적 우위보다 합병 등 인위적 시장구조 변화에 따른 것이라면 정당한 시장 경쟁의 결과로 받아들이기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 지배적 사업자의 높은 점유율은 기존의 높은 점유율이 지렛대가 돼 더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이통시장은 후발사업자가 신기술 및 서비스를 도입할 때마다 지배적 사업자는 모방 또는 따라하기 전략을 통해 후발사업자의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왔다. 지배력의 전이가 용이한 결합상품 출시 등에만 전념해 시장구조를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온 것이다.
후발사업자의 선도적 요금제와 서비스를 통한 시장혁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배적 사업자가 지배력을 전이하거나 남용함으로써 그런 혁신이 좌절돼 버린다면 후발사업자는 더 이상 혁신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이는 동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정책기조와 상반된 결과를 낳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공정거래법 제3조, 미국의 셔먼법 제2조, EC조약 제102조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 남용에 대해 엄격한 법 적용을 통해 규제하고 있다. 특히 시장지배적 기업이 진입장벽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경쟁을 배제하거나 약화시키는 행위, 또는 현재 경쟁적이지 않은 시장에서 진입장벽을 보다 높게 만들어 장기적으로 소비자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는 경쟁사업자 배제적 행위로 정의된다. 경쟁사업자 배제적 행위는 일종의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남용 행위로 엄격한 법 적용의 대상이 된다.
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를 이용한 여러 가지 시장 고착화 의도를 봉쇄하고, 후발사업자의 혁신을 좌절시키는 행위에 대한 과감한 규제와 경쟁 사업자의 노력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올(All) IP시대에 투자활성화 및 통신산업 발전을 위해 불필요한 규제는 줄여주는 것이 필요하나, 공정경쟁 환경에 기반을 둔 경쟁 활성화 유도를 위한 규제의 정비는 소비자 후생 증진 및 지속적 산업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정책방향일 것이다.
김종민 국민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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