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연봉을 잡은 도둑의 수로 계산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치안유지가 잘 될까? 경중을 가리지 않는 마구잡이로 인권유린을 초래하지 않을까? 대학교수의 연봉을 발표한 논문 수로 계산하면 연구의 질이 올라갈까? ‘논문 쓰느라 연구할 시간이 없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국립대학의 새로운 교수 보수체계인 성과급적 연봉제가 2011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해 내년부터는 모든 교수를 대상으로 전면 실시된다. 이른바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이명박 정부가 도입을 추진한 성과급적 연봉제는 연구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대학 공동체를 파괴하는 나쁜 제도이기 때문에 폐지돼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그 동안 수없이 제기돼 왔다.
성과급적 연봉제는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최고 국정의제인 창조경제에도 역행하는 나쁜 제도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진정으로 창조경제를 실현해 한국경제의 성장모델을 추격형 성장에서 선도형 성장으로 전환하려면 성과급적 연봉제를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래 보수체계로서의 성과급은 동질적인 제품의 대량생산체제에 적합한 인센티브 임금 제도다. 제품의 질이 아니라 양이 문제가 되는 대량생산체제에서 주어진 제품을 주어진 시간에 어느 정도 생산하는가에 따라 성과를 측정해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성과급이다. 이런 성과급은 단위 시간당 생산량 즉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
오늘날 성과급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직종은 증권회사 딜러 업무일 것이다. 딜러의 성과는 딜러 개인이 벌어들인 돈으로 쉽게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회사 직원의 연봉도 보험계약 실적이라는 성과에 따라 쉽게 책정될 수 있다. 하지만 고품질 제품 생산, 특히 창의성이 요구되는 생산에서는 노동자의 성과를 양적으로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성과급을 적용하기 어렵다. 지식창출 분야인 연구ㆍ교육ㆍ문화 부문에서 성과급을 적용하면 오히려 조직의 질적 성과가 나빠질 수 있다.
연구와 교육이 이뤄지는 대학에서 성과급적 연봉제가 적용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기존 국립대학 교수의 보수체계는 호봉제에다 성과급이 결합된 형태였다. 호봉제는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임금의 성격을 가졌다. 여기서의 성과급은 주로 연구성과에 따라 지급됐다. 이미 호봉제 아래서도 교수들간의 성과급 격차는 무시하지 못할 상당한 금액에 달하고 있다.
‘호봉제 플러스 성과급’이 성과급적 연봉제로 바뀜에 따라 교수의 연봉이 주로 당해 연도의 양적 연구성과에 따라 결정되게 됐다. 또 지난해의 성과급의 일정 비율이 올해의 기본 연봉에 산입돼 누적된다. 따라서 최초의 연봉 차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확대될 수 있다. 게다가 상위 성과 교수의 더 많은 연봉은 하위 성과 교수의 더 적은 연봉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성과연봉제는 상호 약탈적인 제로섬 게임의 성격을 가진다.
이런 성과급적 연봉제는 연구에서 단기성과주의를 부추겨 오랜 숙성기간을 요하는 장기 연구를 기피하게 만들 것이다. 개별 교수간 원자적 연구 경쟁을 부추겨 서로 다른 전공 교수들간의 학문융합을 통한 새로운 지식창출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 결과 연구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다. 아울러 논문 쓴다고 연구실 문 걸어 잠그고 학생 면담을 기피하는 경향을 낳을 것이다. 성과를 측정하기 어려운 교육을 경시하게 만들 우려도 크다. 교수들간 상호 약탈적 성격 때문에 대학 공동체를 파괴시킬 것이다.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서는 대학에서의 창의성 있는 연구와 학생들의 창의성을 높이는 고품질의 교육이 필수적이다. 성과급적 연봉제는 이런 연구와 교육을 가로막을 것이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성과급적 연봉제 아래서는 노벨상에 근접할 수 있는 획기적인 창의적 연구를 기대하기 어렵다.
연구와 교육에 경쟁원리를 도입해 국립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성과급적 연봉제는 지역 국립대학이 중심이 돼 실현해야 할 창조경제에 역행하고 있다. 창조경제를 실현하려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령으로 실시되고 있는 성과급적 연봉제를 폐지하는 결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창조경제에 적합한 새로운 국립대학 교수 보수체계가 설계되도록 지도력을 발휘해 주길 희망한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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