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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 동부 장악 노골적 눈독…美·서방 "추가제재" 맞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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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 동부 장악 노골적 눈독…美·서방 "추가제재" 맞불

입력
2014.08.3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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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반군 내세워 세력 확장… 크림반도 잇는 육로회랑 구축

美·서방 경고 잇달아… 나토 역내 방어 역할 강화 태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기자들에게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양자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기자들에게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양자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주민이 다수 거주하는 동부지역을 떼내 올해 3월 합병된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육로 회랑(回廊)을 구축하려는 반군의 진격이 거침없다. 크림반도 사태 때 그랬던 것처럼 서방은 사실상 배후에서 러시아가 주도하는 교묘하면서도 일사불란한 군사 작전에 허를 찔린 기색이 역력하다. 이에 맞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대러시아 제재 수준을 끌어올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역내 방어 역할을 강화할 움직임이다.

반군 마리우폴로 진격 시작

외신에 따르면 30일 우크라이나 남부 소도시 노보아조프스크를 점령한 친러시아 반군 수백명이 전략적 항구도시 마리우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반군 대변인은 공공연히 마리우폴을 향해 서쪽으로 진격하는 것이 반군의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노보아조프스크에서 서쪽으로 30㎞ 떨어진 마리우폴은 아조프해 연안의 항구도시로 러시아에 3월 합병된 크림반도를 잇는 길목이다.

반군이 인구 45만의 마리우폴을 장악하게 되면 러시아와 크림을 잇는 지역 전부를 장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반군의 마리우폴 진격은 러시아로부터 새로운 지원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며 이들이 ‘새로운 러시아’라는 뜻의 ‘노보로씨야’(Novorossiya) 깃발을 흔들고 있었으며 이들의 군용 차량과 야전식량 포장지 등에서 러시아군의 흔적을 다수 목격했다고 전했다.

말레이항공기 격추 사건 이후 수세에 몰렸던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도 반군이 정부군 전투기를 격추하는 등 다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분리주의 반군과 교전이 벌어지는 동부지역의 진압작전에 투입됐던 수호이(SU)25 전투기 1대가 29일 격추됐다”며 “조종사는 무사히 탈출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러시아제 대공 미사일 공격을 받은 것 같다”면서 자세한 사고 경위나 피격 지점은 밝히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지난달 18일과 7월 23일에도 반군 소탕작전에 나선 미그29 전투기 1대와 수호이 전투기 2대가 격추당했다.

EU 추가 제재ㆍ나토 신속대응군 창설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 친러 반군이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자 서방도 대응에 부심하고 있다. EU는 일주일 안에 러시아 추가 제재안을 마련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헤르만 반 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3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뒤 “(추가제재를 위한)긴급 예비작업을 통해 한 주안에 제재안을 제시할 것을 EU 집행위원회에 요청한다”고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EU는 우크라이나 군사개입을 되돌릴 수 있는 일주일을 러시아에 준다”며 “그렇지 않으면 추가 제재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의 노골적인 서진을 막기 위해 나토 산하에 신속대응군을 창설하거나 우크라이나를 나토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영국과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나토 7개 회원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해 사단급 규모로 최소 병력 1만명 정도의 신속대응군을 창설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창설될 경우 지휘는 영국이 맡게 되며 지상군뿐 아니라 해군과 공군이 모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나토는 4일 영국에서 열리는 28개 회원국 정상회담에서 이 방안을 최종 승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러시아와 장난치지 않는 게 좋을 것”

그러나 나토 회원국 상당수는 경제난을 이유로 국방비 증액에 난색을 표시하는 등 러시아와 정면 대결을 피하는 상황이어서 서방이 군사부문에서 이른 시일에 효과적인 대러 전선을 구축할지는 미지수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로이터통신도 ‘군사동맹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법률을 폐기하고서라도 나토에 가입하겠다는 우크라이나의 읍소(泣訴)가 신속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와 관련 연간 1조달러에 달하는 나토 국방비의 73%를 미국이 떠맡는 현실이 고쳐지지 않으면 러시아의 군사위협에 서방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글라스 루트 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안보를 군사동맹으로 보장받는 국가라면 그에 상응하는 보험료를 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유럽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 비중을 높이려는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러시아는 이런 나토 강화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0일 크렘린궁이 개최한 청소년 캠프에 참석해 “러시아는 대규모 갈등을 원하지도 의도하지 않고 있으나 러시아와는 장난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러시아는 가장 강력한 핵무기 보유국 중 하나이고 핵능력을 앞으로도 계속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핵무기 보유국임을 상기시키며 우크라이나를 비호하는 서방에 엄포를 놓은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2시간에 걸친 양자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도중 두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2시간에 걸친 양자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도중 두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 여론은 분쟁 격화에 우려

우크라이나 반군의 세력 확장은 푸틴이 크림에 이어 우크라이나 동부까지 욕심 낸다는 증거다. 하지만 그 야심을 크림반도 때처럼 쉽게 성사시키기는 어려울 수 있다. 거듭된 미국과 EU의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점점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데다, 장기간에 걸친 대결을 불사하며 이 상태를 끌고 갈 경우 푸틴의 리더십에 대한 국내의 불신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 여론이 푸틴에 등을 돌리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러시아의 여론조사기관인 레바다센터가 29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본격적인 분쟁이 시작될 경우 정부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41%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크림 합병 때는 비슷한 질문에 대한 응답이 74%였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당시 13%에서 이번에는 43%로 늘었다.

러시아 동부 분쟁 지역인 도네츠크, 루간스크주 합병을 원하는 비율도 지난 4월 35%에서 21%로 줄었다. 크림 때와 달리 동부에서 분쟁이 격화하고 러시아가 직접 개입할 경우 대규모 유혈 사태가 불가피한데다 러시아로 넘어오는 우크라이나 난민도 적지 않을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푸틴 지지율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8월 초 87%에서 84%로 떨어졌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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