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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스마트 의료’ 피할 수 없다

입력
2014.08.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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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이상이 없네요.”

반가운 의사의 말에 외래 환자는 오히려 허탈한 표정이었다. 폐에서 정체불명의 검은 점이 발견돼 지방 병원을 거쳐 서울의 종합병원을 주기적으로 찾고 있는 인척 어르신은 방을 나서면서 “이런 걸 들으러 꼭 직접 와야 하느냐”고 한마디 했다. 잠깐의 의사 면담, 그로부터 일주일 후 가래 검사 및 CT촬영, 그리고 다시 일주일 후 검사결과를 통보 받기 위해 나이 70에 매번 네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문제가 없는 결과라면 전화나 문자로 알려줘도 되지 않느냐는 항변이었다.

뜬금 없이 인척 어르신의 병원 이야기를 꺼낸 건 원격의료 때문이다. 정부는 다음달 중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강행하려 하고 있고, 이에 맞서 의사협회는 다시 강력한 반대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원격의료는 의사가 스마트폰이나 웹캠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원거리 환자를 진찰해 상담하거나 처방해 주는 걸 말한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제한적으로 도입하려다 의협의 반발로 무산됐고, 다시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는 상태다.

의협은 원격의료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대면진료가 원격의료로 대체되면 오진 가능성이 높고, 대형 병원으로 환자가 몰려 가뜩이나 어려운 동네병원이 고사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는 의협의 반대가 계속되자 최근 원격의료가 아닌 원격모니터링 수준의 시범사업부터 하자고 한발 물러난 상태다. 의협은 이것마저도 원격의료로 가기 위한 수순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사실 원격의료는 세계적으로 보편화하는 추세다. 최근 웨어러블 기기(사용자의 몸에 부착해 ‘입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 헬스케어 기술이 혁명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미 의료 선진국에서는 모바일 장비를 활용해 혈당을 모니터링하는 수준을 넘어 앱으로 처방을 조절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파킨슨병, 간질 등 운동장애를 가진 환자에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제 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약물이 투입돼 치료까지 가능해지는 ‘만능 파스(스마트 스킨)’가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 뇌신경세포가 죽으면서 발생하는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완화 및 치료에 기여하는 웨어러블 기기도 임상실험 중이다.

문제는 의료기관인 병·의원에서 이를 활용하는 예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데이터를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이고, 관련 의료수가도 책정돼 있지 않아서다. 생체정보는 측정 방식에 따라 정확성과 효율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일단 확실한 데이터 축적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원격의료의 기초인 원격모니터링은 환자의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고 의료비 지출도 줄이게 된다는 데이터가 선진국에서는 쌓이고 있다. 우리도 시행해야 한다. 이는 현행 의료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당장 가능한 영역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모니터링 시범사업을 단순히 동네의원들의 밥줄을 끊는 행위로 봐서 안 되는 이유다. 앞으로 생체정보를 감지하는 첨단 IT센싱(Sensing) 기술이 더욱 발달하고 의료정보의 표준화가 이뤄지면 데이터축적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빨라질 것이다. 이게 의료경쟁력을 좌우하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격의료가 대면진료를 대체할 것으로 과장하면서 원격모니터링 자체까지 거부하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IT와 의료분야의 융ㆍ복합 추세를 볼 때 의료의 스마트화는 피할 수 없다. 때문에 현단계에선 원격모니터링과 원격의료를 분리하고, 원격의료의 허용 범위를 엄격히 제안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의협의 반대로 원격의료나 원격모니터링의 시행이 연기돼도 최첨단 웨어러블 기기와 의료경험, 데이터로 무장한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의 안방을 공략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한국은 최첨단 IT 국가로서 최적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의료의 스마트화 흐름에 능동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동네의원도 살리고, 의료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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