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미술가 김영주는 고대적인 세계관에서는 초자연적이고 초현실적인 존재들이 현실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서로 의미와 차원을 달리하는 세계도 일원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의 글에 의하면 삶 속에 영신적인 세계와 현실적인 세계가 함께 하는 것이다. 가을 날 마루에 앉은 잠자리의 날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런 세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몇 년간 파주에 둥지를 틀고 보니 임진강 줄기를 따라 연천구간을 자주 산책하게 되며 나는 자주 초자연적인 풍경들을 보곤 했다. 연천구간엔 용암지대가 오랜 기간 침식되어 형성된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제주의 해안지역이나 여수의 해역 등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주상절리는 거북등껍질 모양의 굳은 현무암 용암덩어리들이다.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늘어선 연천일대는 그 풍경이 초현실적인 황량함이 있다. 아마도 DMZ가 가까워지고 시야가 가리는 곳이 없어 그런 느낌이 더하리라. 최근에 이 일대는 트레킹코스로도 잘 알려져 인파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제법 외국인들도 보인다. 한반도의 분단역사가 빚어낸 기묘한 우듬지를 구경하려는 외국인들의 호기심이 모여든 것이다.
임진강은 고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와 물빛을 노래해 왔으며 그 사이에 인간의 정념과 회한을 담아왔다. 임진강은 가까이 가면 갈수록 쓸쓸함이 더하다. 멀리 이사와 건진 것이 하나 있다면 저녁의 산책만한 공책이 없다는 것이다. 강가에 서서 돌멩이처럼 한 두어 시간 서 있거나 가물가물한 유역에 그냥 멍하니 시선을 흘려 넣고만 있어도 좋다. 그 중에서도 요즘처럼 여름이 다가오는 무렵의 임진강은 물결의 수위가 제법 좋은 그늘을 만들고 주변의 갈대밭이 주는 황량한 구석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음영을 제공해준다. 강은 모름지기 그늘의 미학이라는 것이 살아있어야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임진강의 저녁산책은 그윽하다.
캄캄한 돌덩이를 가만히 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우리는 누구에게도 비난 받을 이유가 없다. 삶이란 때로 돌덩이를 가만 보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한 법이므로.
상류는 전형적인 산지하천으로 강바닥의 경사가 심하다. 연안에 충적지가 발달하지 못해서 주로 하류연안에야 임진강 어구평야라고 불릴만한 충적지가 보인다. 하지만 상류일대의 일품이라고 할 만한 소나무 참나무의 울창한 숲과 더불어 석회암, 규암, 점판암, 결정편암이나 판교 이천지역의 화강암 덩어리들, 철원 평강지역의 현무암 무더기들은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절경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임진강은 법동군 용포리의 두류산에서 방원하여 개성시 관문군과 경기도 파주군 사이에서 한강으로 흘러오는 강이다. 옛말로는 칠중하라 하였고 한강의 제1지류에 해당한다. 임진강은 오른쪽으로는 아호비령의 산맥이 뻗어있고 왼쪽 유역으로는 자잘한 지류들이 흘러있다. 강원도 고미탄천과 경기도 평안천, 한탄강등이 주요 지류라고 할 수 있는데 5㎞이상의 지류들이 250여 개나 되어 강으로 치자면 결코 곱고 아담한 수준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깊고 넓은 축에 속하는 강이다. 고사를 들추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국경으로 분쟁이 잦은 지역에 해당하여 6ㆍ25전쟁 이전에는 고랑포까지 배가 다녔다고 한다. 수상교통의 요지로도 중요한 장소에 해당해 작은 나룻배는 안협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임진강의 유역을 제대로 둘러보기 위해서는 유역안의 저수지를 돌아보는 것도 제 맛을 알아가는 방법인데 봉래호, 죽대저수지, 신당저수지, 난송저수지, 송도저수지 등이 모두 그 유역 안에 해당하므로 알아두면 좋다. 김포고양 파주 연천의 비무장지대 인근을 따라 평화누리길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산책로가 개발되었으므로 통제구역 바깥이긴 하지만 남북 분단의 현장을 바라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이 구역의 현장성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 보이는 철책에 묻어 있을 차갑고 비린 이슬 냄새를 맡아보라. 저 멀리 강심에 실려 오는 풍경은 임진강의 유역에서만 가능한 북의 풍경일 것이므로.
김경주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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