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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 삼성家 “CJ 선처” 탄원서

입력
2014.08.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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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화해와 포용의 모습

재벌총수라고 逆차별 하는 것도 문제

사적인 호소지만 공적인 약속 의미도

신선한 뉴스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삼성-CJ 화해의 물꼬 트나’는 제목, 29일자 한국일보 2면 톱기사였다. ‘내달 4일 이재현 CJ회장 항소심 앞두고 삼성가족들이 모두 마음을 모아 선처를 원하는 탄원서 제출, 재산상속 법정 다툼 등 양측간의 앙금 털게 될까 주목된다’는 내용이었다. 보기 드물었던 ‘화해’라는 단어가 일단 반갑다.

삼성그룹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씨와 셋째 아들 이건희씨 사이의 상속재산 법정 다툼이 국민의 눈에 CJ그룹과 삼성그룹 사이의 감정싸움으로 각인된 것이 2년이 넘었다. 가족간 다툼이나 법적 상속문제는 일반 국민이 특별한 관심을 가질 사안이 아니었을 것이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대의 재벌 삼성그룹과 대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글로벌 생활문화를 기치로 내건 CJ그룹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사실에 세간의 관심은 쏠려 있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양측은 상대 계열사에 대해 거래를 중단ㆍ해지하는 미묘한 보복조치를 하기도 했고, 일부 직원들의 행태를 둘러싸고 극도의 신경전을 펴기도 했다. 국민들의 눈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 사이 ‘4촌간의 결투’로 비춰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소문을 낳고, 추측이 억측으로 발전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소송이 올해 초 마무리된 후에도 소문과 억측은 그치지 않았고, 부질없는 호사가들의 입만 즐겁게 했다.

지난 19일 법원에 제출된 탄원서에는 고 이병철 회장 가족들의 이름이 빠짐없이 서명돼 있어 문자 그대로 삼성가(家)의 탄원서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 이재현 회장이 현재의 건강상태로는 수감생활을 견뎌낼 수 없으니 선처해 달라는 것, CJ그룹 경영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달라는 것이다. 지난 14일 고법 결심공판에서 이재현 회장은 “살고 싶다. 살아서, 스스로 시작한 CJ의 문화사업을 완성하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삼성가의 탄원서는 이재현 회장의 호소를 다시 한번 그대로 강조하고 있다.

이재현 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와 그의 건강상태를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구속수감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해야 할 만큼 무거운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구속수감 상태를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상태가 심각하다는 사실도 분명해 보인다. 아울러 CJ그룹이 시시각각 추진해야 할 글로벌 생활문화 사업에 커다란 차질을 빚고 있다는 사실은 업계의 공통된 판단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이 덮여 버리는 것은 그가 ‘재벌기업의 총수’라는 사실 때문이다.

국민들은 부자들의 부도덕한 치부 과정에 깊은 혐오감을 갖고 있고, 그들이 법정에 서게 될 때면 어김없이 동원되는 휠체어와 링거병에 심각한 염증을 느끼고 있다. ‘꾀병’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은 그 동안의 경험들로 인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형성돼 왔다. 부자들의 몰염치와 ‘꾀병’을 공정하게 가려내지 못했던 사법당국의 책임과 과오가 아닐 수 없다. 유전무죄(有錢無罪)란 말이 생겨난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못지않게 경계해야 할 대목은 수감되어 몸이 아프다면 당연히 꾀병일 것이고, 재벌이라면 무조건 유죄일 것이라는 선입견이다. 유전무죄의 폐해가 있어선 물론 안되지만 ‘역(逆)차별’의 폐해 역시 있어선 안될 일이다. 이재현 회장의 경우 수감 현장에서 ‘건강상태가 심각해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건의를 올렸으나 여론 때문에 묵살됐다면 이 역시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

삼성가의 탄원서가 삼성그룹과 CJ그룹이 화해와 포용의 물꼬를 트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긍정적 효과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탄원서 제출을 계기로 삼성가는 세간에서 잊혀졌으면 좋았을 듯한 ‘치부’들이 새삼 회자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현 회장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때 미워했던 회사의 앞날’을 걱정하며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한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삼성그룹과 삼성일가의 무게로 볼 때 그들의 탄원서의 내용은 사법부에 대한 호소인 동시에 국가 사회에 대한 약속과 다짐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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