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김제동 등 농성장 방문… 릴레이 강연으로 상처 보듬어
"대화와 솔직한 감정 표현이 중요… 울고 싶을 땐 참지 말고 우세요"
“몇 년 사귄 애인과 헤어져도 죽을 만큼 힘든데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 마음은 그것의 수백, 수천만배가 아닐까요. 유가족의 절절한 심정은 그 누구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29일 저녁 서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은 작은 ‘힐링 캠프’였다. 개그맨 김제동씨는 노숙농성 8일째에 접어든 유가족들 앞에서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위로했다. 단상도, 대형 스피커도 없는 노상이었지만 유가족 40여명은 김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김씨의 입담에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흐느낌과 한숨을 보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ㆍ실종자ㆍ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김씨의 방문은 4월 16일 참사 이후 지친 유가족들을 치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가족대책위는 28일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를 비롯해 농성장에 사회 각계 인사들을 초청해 릴레이 강연을 열기 시작했다.
김씨는 젊은 시절 힘들게 살았던 자신의 개인사부터 풀어내며 고통을 고통으로 위로하려 했다. 이어 강연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사람이 죽었으면 어떻게 왜 죽었는지를 가려내야 한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문제”라며 “이것에 보수, 진보의 차이 등 정치적인 여지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가 “혹시 농성을 하면서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강연을 시작하며 질문을 하자 유가족들은 한 목소리로 “세월호특별법”이라고 외친 것에 대한 답이었다.
김씨는 “결국 아이들이 커서 노동자나 경찰 군인이 되면서 국가를 만드는 것인데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며 “더 이상 비극이 재연되지 않게 진상규명은 꼭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또한 “대통령에게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고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약속을 지키도록 그 말에 책임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단원고 고 안형준군의 아버지 재용씨가 “일반 사람들이 세월호특별법이나 유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궁금하다”고 하자 김씨는 “일각에서는 유가족이 농성까지 했어야 했느냐며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유가족들에게 조용히 마음을 보태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며 유가족들을 응원했다.
전날 정혜신 박사는 세월호 참사로 형제를 잃은 자녀들을 어떻게 보살필지 유가족들과 고민했다. 유가족 다수가 “남은 아이들도 부모 못지 않게 힘들 텐데 우리가 농성장에 나와 있어 돌봐주지 못 하고 있다”며 괴로움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정 박사는 “부모들 모두 에너지의 99%를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에 쏟는 상황에서 당연한 현상”이라며 “스스로를 혹독하게 몰아붙이기보다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다독였다. 남은 형제를 대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대화를 통해 부모와 아이가 상처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정 박사는 또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며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하려 하지 말고 유가족이 돌아가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때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한형직기자 hjhan@hk.co.kr
이현주기자 mem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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