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수확인데, 느닷없이 나타난 메뚜기 때문에 농사를 망칠까 걱정이네요."
29일 오후 전남 해남군 산이면 덕호마을 주민 이병길(53)씨는 메뚜기들이 갉아먹은 나락을 매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벼 잎들은 군데군데 구멍이 났고, 줄기가 끊어져 나락이 노랗게 변해 있었다.
이 씨의 논에 메뚜기떼가 출현한 것은 사나흘 전. 아침 일찍 논에 나왔다가 뭔가 검은 벌레들이 뭉쳐 있는 것을 보고 이 씨는 깜짝 놀랐다.
마을 토박이로 53년을 살았지만, 이렇게 수많은 메뚜기를 본 적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 씨는 즉시 산이면사무소에 신고하고 매일 3차례씩 농약을 뿌리며 '메뚜기와 전쟁'에 나섰다.
그러나 메뚜기떼는 줄지 않았고, 농약도 잘 듣지 않는 듯 오히려 수가 늘어갔다.
실제 메뚜기들이 서식 중인 간척 농지는 시커멓게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방제작업이 시작되자 수십만 마리가 떼를 지어 농로를 건너 다른 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2~4cm 크기의 이 메뚜기들은 이제 막 허물을 벗고 나온 유충 형태로 날지는 못했다. 사람이 다가가면 30~50cm 높이로 뛰면서 이리저리 피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전쟁을 피해 이동하는 난민들처럼 길게 줄을 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소름 끼칠 정도로 기괴했다.
무엇보다 정확한 종 파악을 위해 면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이 씨는 "사흘 전에 면사무소에 신고했는데 이제야 나와 약을 뿌리고 있다"며 "매일 약을 해도 소용없고 숫자는 갈수록 늘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그는 이어 "간척지가 생기면서 농지를 임대해준 뒤 관리를 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겼다"며 "방제는 군청이 하고 농어촌공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남군은 메뚜기떼가 이동하며 피해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날 오후 친환경 살충제로 긴급 방제에 나섰다.
방제에 나선 농민과 공무원들은 살충제도 잘 듣지 않자 메뚜기들을 모아 결국 불을 놓았다. 살충제와 흰 연기가 뒤섞여 안개처럼 간척지에 퍼지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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