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급작스레 생각지도 못했던 수술을 받게 됐다. 당장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병은 아니라 여러 일들이 걸리긴 했지만 난소에 종양이 무려 12㎝의 크기로 자라고 있다는 진단을 듣고서는 더 미뤄둘 수가 없었다. 작업할 때는 참 사소한 데까지 예민을 떨곤 했는데 뱃속에 자몽 크기 만한 덩어리를 달고 다녔다니 내 스스로도 미련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진료를 한 의사 선생님은 이래서 어떻게 일상 생활이 가능하더냐고 혀를 찼다. 본래 체력이 나쁜 편이 아니었는데 근래 들어서는 조금 무리를 하면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을 쉬어야 회복이 되곤 했다. 그래도 이것이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점점 심해지는 생리통도 역시 나이 탓이라며 대략 넘겨짚고 말았다.
모임에서 나와 비슷한 증상으로 수술한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이때는 재빨리) 진단을 받았고, 입원을 하기까지는 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막상 수술을 하자니 검색을 할 때마다 다른 정보들이 쏟아져서 어디에서 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 지 헷갈리기도 하고 궁금한 것들이 늘어만 갔다. 결국 주변에 이리저리 알아보니 정말 놀랄 만큼 많은 친구들이 크고 작은 자궁의 문제를 겪었거나 아니면 나처럼 무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내 주변인들의 상당수가 비혼의 작가들이라 출산의 경험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제대로 된 정기적인 건강 검진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직업이기 때문에 더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해도 불과 작년에 국민건강보험 공단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검진에 내시경 등 몇 가지를 추가로 더했지만 기본적인 산부인과의 검사로는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작년 초에는 인천에 있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입주하게 되면서 참 반가울 ‘뻔’ 했던 소식을 듣게 되기도 했었다. 아티스트 레지던시란 일정 기간 동안 특정 지역의 예술 기관이 작가들을 선정해 그곳에서 체류하면서 작업할 수 있도록 시설을 제공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뜻한다. 당시 오리엔테이션이 열리는 자리에서 여느 다른 레지던시의 기관과도 차별되게 그곳에서는 입주 작가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지원한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고 입주 예정인 작가들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감탄하며 정말 필요한 제도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막상 입주를 하고 검진 안내를 받아보니 대상이 ‘직장 및 지역의료보험(만45세 이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아보지 못한 예술가’였다. 직장이야 대부분 해당되지 않겠지만 아무려면 지역의료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은 작가들이 과연 몇이나 됐을까.
그럴듯한 제도를 만들어놓고 너무나 형식적으로 운용하는 것에 기가 막혀 담당자에게 항의했는데 알고 보니 애매한 기준을 적용해서 혜택을 받은 작가들도 있었지만 결국 예산 문제로 실행이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는 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말을 말 것이지. 그런데 당시 그 기관의 관장으로 있었던 인사가 얼마 전 공금 유용 등 부적절한 사업비 집행으로 결국 직위 해체가 됐다니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얽히고 설켜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그때 적절한 검진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큰 비용을 지불하면서 5시간에 달하는 수술을 하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건강상태를 점검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어디 예술인들 뿐일까. 저소득층 비정규직 종사자들은 대부분 체력이 밑천인 일을 하지만 정작 제 몸을 돌볼 기회를 갖지 못한다. 지난 27일 서울대병원 노조가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이미 두 차례 경고 파업을 했으나 병원 측의 입장 변화가 없어 무기한 파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병원을 돈벌이 회사로 만들고,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킬 의료민영화 정책을 철회하라는 국민적 요구를 무시하고 공공병원은 불법 영리자회사 만들기에 앞장서고, 병원을 백화점으로 만들 수천억원짜리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민영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이를 둘러싼 무시무시한 괴담들이 떠오른다.
이정민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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