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목 디스크 때문에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매주 내 목과 어깨에 침을 놓는 한의사는 최근 김문기(82)씨의 총장 복귀로 논란의 중심에 선 상지대 출신이다.
“입학해 학교를 둘러보니 캠퍼스의 건물들이 다 똑 같은 모양이었다. 무슨 중고등학교도 아니고…. 이유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김문기씨가 설계비를 아끼려고 그랬다 더라. 비가 오면 물이 줄줄 새는 건물도 많았고, 투자란 개념은 전혀 없던 학교였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 생활을 하다가 한의사가 되기 위해 2000년대 초 30대 후반의 나이에 상지대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가 상지대를 다닌 시기는 김문기씨가 학교에서 쫓겨나 있던 때였다. 그럼에도 김씨의 흔적은 학교 곳곳에 남아 있었고, 때로는 새롭게 눈앞에 나타났다고 했다.
“한번은 방학이 끝나 학교에 갔더니 공사할 때 쓰는 H빔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심지어 길에도 H빔을 심어놔 학생들이 지나다닐 수 없었다. 김문기씨가 학교 안에 있는 자기 소유 땅에 건물을 짓겠다며 ‘알박기’를 한 것인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서관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도서관에 가보니 ‘사건과 실화’류의 얄궂은 책들만 가득했다. 저자도 출판사도 불분명한 해적판 책들이었는데, 도서관 건물 달랑 지어놓고 도서 권수 채우기 위해 길거리에서 파는 이상한 책들만 구해 모아놓은 것 같았다.”
김문기씨는 사학 비리에 유독 관대한 우리 사회에서도 1년6개월을 복역해 역대 사학 비리 관련자 중 가장 무거운 형을 받은 인물이다.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부동산 투기를 해 재산을 부풀리고, 학생들을 편입학 시켜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으며, 교수를 채용하며 충성서약과 봉급포기각서를 받았다. 친인척들을 학교 요직에 앉혀 족벌 체제를 구축했고, 심지어 재단의 불법 행위에 학생들이 항의하자 교직원을 시켜 북한을 찬양하는 유인물을 뿌린 뒤 마치 학생들의 소행인 것처럼 조작하기도 했다.
김씨는 1993년 김영삼 정부 초기 전격 시행된 재산공개에서 185억원을 신고했고, 부동산 투기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김씨의 비리 규모를 보고받고 충격을 받았을 정도라고 하니 그가 사회에 던진 충격파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김문기씨가 20년만에 상지대에 돌아와 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저는 대한민국의 법질서 및 합법적 의사결정 구조에 따라 총장에 선임됐습니다.” 맞는 말이다. 그의 측근들은 합법적 절차에 따라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 이사회를 장악했고, 그는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총장에 선임됐다. 법적 하자가 없으니 교육부도 그의 사퇴를 권고ㆍ촉구한다고 요란만 떨 뿐 할 수 있는 게 없다.
도대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법은 뭘까. 사립학교법이다. 사학재단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노무현정부때 사학법을 개정, 학교구성원이 추천하는 ‘개방이사제’를 도입했지만 당시 한나라당의 반대로 법이 재개정되면서 취지가 퇴색됐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 사학법 개정에 반대해 장외투쟁을 이끈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게다가 이 사학법은 범죄 행위로 실형을 선고 받은 사람도 5년만 지나면 학교법인 임원으로 복귀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문기씨는 실형을 받은 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법인 이사 취임에 결격 사유가 없는 셈(다만 교육부는 김씨의 이사 취임 만은 거부했다)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사학법 재개정 취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사학이 자율성을 갖고 건학 이념을 잘 살려 인재를 육성하자는 것”이라며 “당시 한나라당의 법안은 자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비리에 대해선 엄격하게 적용하는 법”이라고 말했었다. 이어 “사학설립자들은 인재를 키우고 싶다는 꿈을 갖고 사재를 턴 것 아니겠냐”고도 말했다.
사학의 자율성은 존중 받아야 마땅하지만 자격을 갖춘 사학만 보호하도록 법이 바뀌는 게 옳다. 김문기씨가 1990년 재단전입금으로 내놓은 돈은 3,000원이었다. 박 대통령이 거리로 나서면서까지 ‘지켜냈던’ 사학법이 고작 비리 전력자의 학교 복귀를 방조하는 데 쓰여서야 되겠는가.
한준규 사회부 차장대우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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