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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밤 10시 55분, 시청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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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밤 10시 55분, 시청 앞에서

입력
2014.08.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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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고선웅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요즘도 자주 떠오르는 이야기는 역시나 본질은 무엇이냐다. 학교 때 옆 집 경영대학에서 하는 얘기는 늘 ‘도대체 마케팅이란 무엇이냐’였다. 내가 다니던 과에서는 여지없이 ‘커뮤니케이션은 무엇이냐’였다. 그리고 지금 하고 사는 연극에서도 여지없이 ‘도대체 연극이 무엇이냐’다. 여전히 몰라 어렵다. 그런데 종사하다보니 연극의 본질은 대충 보인다. 연극은 인간이 행복하려고 만든 많은 것 중의 하나다.

어제 저녁부터 시청 주변에 있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서 나름대로 행복하고 진지했었다. 그러다가 막내라서 모두가 떠나가는 길을 배웅했다. 그리고 나서다. 나의 동선으로 택시가 안 잡혔다. 시청 앞 광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웬일인가. 여지없이 여전히 노란 리본들이 마치 종유동의 기둥처럼 훨씬 더 두껍게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는 여전히 꽃을 바쳤고 여전히 리본을 묶었다. 그 날, 세월호의 충격은 다시금 내 가슴을 지배했고 나의 얼굴은 굳어버렸다. 언제던가 아이들을 데리고 헌화했던 자리에 서서 또다시 외면할 수 없어 국화송이를 바쳤다. 지난날에는 줄 서 기다렸지만 오늘 밤의 헌화는 조바심을 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한산했다. 밤 10시 30분. 헌화를 하고 한참을 서있었다. 또다시 트라우마처럼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여전히 어딘가가 뻐근하게 아프다.

술김이라선가. 나는 느닷없이 그 자리를 단호하게 떠나고 싶었다. 광장의 보도블록을 밟았다. 견고하게 꾹꾹 밟았다. 각 도에서 올라온 고추를 판매하려 열을 올렸던 닫힌 텐트를 지나 택시를 잡으려고 대로에 들어섰다. 나의 패기와는 아랑곳없이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정말이지 잡히지 않는다. 택시들은 시청 앞에서 ‘예약’이라는 붉은 빛깔의 엘이디판을 떳떳하게 뽐내며 빙상장의 트랙을 돌 듯 내 주위를 감고 지나쳤다. ‘빈차’라는 팻말을 단 택시도 역시나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시청 앞을 막 달려 지나갔다. 행선지를 말하는 나의 열변은 여지없이 허공만 갈랐다. 옛날, 자가용차로 영업을 하던 시대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모범택시를 잡았다. 그 택시는 다행히도 여전히 나에게 깍듯했다. 그런데.

택시에 앉은 내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한 거라. 세월호의 진정성을 이야기하는 광장의 순수가 그 옆을 쌩쌩 지나치는 사람들의 분주함과 묘하게 칵테일처럼 섞였다. 나는 정말이지 그네들에게 관심이 깊이 없다. 나는 현재를 사는 인생으로 충분히 복잡하게 얽혀있고 고단하다. 그러나 이 광장과 그것을 둘러싸고 지나치는 택시는 내가 무시한다고 안 보이는 그런 게재가 아니지 않나. 세월호라는 섬과 그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절실한 인생들의 치열한 오늘은 과연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마땅한가.

다만 각설하고, 내 생각이다. 이제는 관을 내려놔야 한다. 살아있는 자는 또 살아가야하니까. 자고이래로 자명하게 그래왔다. 그런데 살아있는 자들이 관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까닭이 역시 만만치가 않다. 그 당자 역시, 관을 내려놔야 비로소 살 수 있지 않겠나. 그러니까다. 왜 그러느냐고, 아무리 내려놓으라고 보채봤자 잘 안내려질 게 뻔하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니면 그 속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보상금 때문에? 제발 천한 이야기로 본질을 호도하지 말자. 애를 낳고 길러본 사람은 누구라도 안다. 돈이 자식의 죽음과 바꿔질 대체재가 전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 하찮은 돈? 나중에 법대로 정하면 그뿐이다. 그 돈이 적다, 많다는 그때 가서 다시 판단하면 된다. 제발이지 지금은 본질이 먼저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그 고통스러운 관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만 합의해달라는 말이다.

10시 55분, 택시운전사가 그런다. 지금이 제일 중요한 타임이라고. 중요하지 않은 타임이 누군들 있겠나. 천금 같은 세월이 속절도 없이 흘러갔다. 싸울 일이 남아있다면 더 싸워도 된다. 하지만 계속 지켜보다가 지쳤다. 너무 지난해서 이제는 눈길을 돌리고만 싶다. 노란 리본을 이제는 그만 묶자. 풀 때가 되었다. 풀 수 있게 돕자. 제발 그렇게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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