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흥미 잃고 지각 잦은 아이 일대일 결연으로 다가가자
마음 열고 학습동기도 생겨… 한 학년을 팀제로 나눠 수업
“선생님, 저 좀 잘생긴 것 같지 않아요?”
올해 1학기 초만 해도 늘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던 서울 남부초 5학년 태민(가명)이. 6개월이 지난 요즘은 먼저 선생님에게 다가가 아는 체 하며 너스레를 떨 정도로 밝아졌다. 담임인 송경민 교사는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다’며 자기 머리만 쥐어뜯던 아이가 언젠가부터 웃기 시작하고, 눈빛이 달라졌을 때 신기했다”고 말했다.
태민이가 달라진 것은 ‘선생님이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느낀 이후부터였다. 이전까지 태민이에게 선생님은 공부 못한다고 혼내거나 외면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선생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자 태민이는 변했다. 송 교사가 일대일 결연을 맺고, 한 학기 내내 공을 들인 결과였다.
4학년 때까지 태민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수업시간 내내 ‘자는 아이’로 통했다. 태민이는 “3학년 때부터 너무 어려워서 수업을 안 듣기 시작했다”며 “들어봤자 내용을 모르니 잘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태민이는 5학년인데도 구구단을 못 외울 정도로 학습 결손이 심각했다.
수업 내용을 모르니 학교생활에 흥미를 가질 수 없었다. 숙제를 안 해오거나 준비물을 안 챙겨오는 것은 예사고, 지각도 밥 먹듯 했다.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는 수업에는 적극적인 편인데 태민이는 체육시간에도 무기력했다. 운동신경이 있는 편인데도 피구를 하면서 대충 던지고, 피할 수 있는 공도 그냥 맞곤 했다.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신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혼자서 교실 안을 맴돌았다. 태민이는 교직 생활 9년째인 송 교사가 만난 가장 ‘어려운 아이’ 였다.
송 교사는 수업 중엔 태민이에게만 시간을 쏟을 수 없어 아예 일대일 결연을 맺었다. 쉬는 시간 마다 불러 이야기하며 다독이고, 방과후 함께 남아 숙제를 도왔다. 떡볶이나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으면서 말을 걸었다. 처음엔 대꾸도 안 하던 태민이는 올해 5월쯤부터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매일 하던 지각도 일주일에 두번 정도로 줄었고, 수업시간에도 졸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젠 선생님에게 농담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가 됐다. 송 교사는 “평소 관심 받기 힘든 선생님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며 “관계 형성이 잘 되면 아이들은 확실히 변한다”고 말했다.
학생과 교사와의 관계 개선. 2012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남부초등학교가 중점을 두고 있는 어울림 활동의 일환이다. 학생들이 교사와 친해져야 학교에 마음을 둘 수 있다는 생각에 일대일 결연이 맺어진다. 이옥희 남부초 교감은 “교사와의 관계가 좋아지면 학생들이 스스로 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학습동기도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말했다.
이 학교 6학년 3반은 어울림활동으로 텃밭을 가꾼다. 경기 과천의 한 농장에 10여평의 땅을 분양 받아 격주 토요일마다 교사와 학생들이 오이, 가지, 호박, 고추, 방울토마토, 상추를 기른다. 씨를 뿌리고, 잡초도 뽑은 후엔 김광빈 담임 교사의 집에 가서 다 함께 식사하며 어울린다. 김 교사는 “학교생활 중엔 학생들끼리 친해질 시간이 생각보다 부족하다”며 “학교 밖에서 어울면서 서로 많이 친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말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내성적인 아이가 이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장난을 칠 정도로 변했다”고 말했다.
남부초등학교에선 가정 방문도 활발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 특성 상 아이들의 가정 환경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10년 넘게 가정 방문을 해오고 있는 이 학교 강미영 교사는 “집에 가 보면 아이의 모습이 3D 화면 처럼 입체적으로 와 닿아서 평소 왜 저럴까 싶었던 아이의 행동도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경제적 환경이나 속사정을 알게 되면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된다”고 덧붙였다.
교사들은 가정방문을 기초로 아이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맞춤형 지원을 한다. 평소 연산 속도가 느리고 시험을 보면 60점도 못 맞았던 효연(가명)이가 대표적인 사례다.
효연이의 집을 방문한 강 교사는 엄마와 단 둘이 사는 효연이의 공부를 챙겨 줄 사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효연이는 낮에 일하고 밤 늦게 돌아오는 엄마의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강 교사는 매주 2~3번씩 개인지도를 해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학습지능유형검사를 해봤더니 공간지각력이 굉장히 높게 나와 “넌 엄청난 아이”라고 격려했다. 효연이는 원래 수학을 못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능력이 있었는데도 잠재력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강 교사는 “아이의 자존감이 살아나면서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며 “딴짓하고 장난치던 아이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부에도 의욕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이 점점 단축됐고, 6월에는 반 아이들 중 가장 먼저 문제를 풀 정도로 효연이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강 교사는 “학생들은 교사를 좋아하거나 공부를 좋아해야 수업에 재미를 느낀다”며 “학습 부진 학생의 경우 처음부터 공부를 좋아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교사부터 좋아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부초는 생활지도가 어려운 6학년의 경우에는 팀제를 운영한다. 6개 반을 3개씩 나눈 뒤 각 반의 담임교사들이 자신 있는 특정 교과를 맡아 3개 반의 수업을 돌아가며 들어가는 방식이다. 여기에 교과 담당 교사 1명을 추가로 배정한다. 학생 입장에서는 4명의 교사를 담임으로 갖는 셈이다. 안종복 남부초 교장은 “교사도 사람인 이상 어떤 학생과는 성향이 맞지 않을 수 있고, 그러면 서로 1년이 괴롭다”며 “적어도 4명의 교사 중 한 명과는 학생이 마음을 열수 있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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