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2일 오전 1시쯤 서울 강동경찰서 112상황실에 폭행사건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인 남편(73)은 다급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맞고 있다.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수화기 너머로 “죽여버리겠다”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찰차가 성내동 한 주택으로 급파됐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할 말을 잃었다. 9㎡(3평)도 되지 않는 작은 방은 아수라장이었다. A(60ㆍ여)씨가 던진 유리컵 파편에 맞아 남편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경찰들이 출동한 뒤에도 키 170㎝정도 되는 A씨는 자신보다 10㎝는 작은 남편의 얼굴과 등을 무차별 폭행했다. 경찰이 제지하자 A씨는 깨진 술병으로 팔과 다리를 자해했다. A씨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평소 온순했던 A씨는 술만 마시면 돌변했다. 10여년 전 보증을 서줬던 지인이 부도를 내고 도망가는 바람에 살던 집과 예금 등 평생 모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날아간 뒤부터다. A씨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고 남편을 때렸다. 참다 못한 아들과 딸이 집을 나가자 술주정은 더 심해졌다.
남편은 절대 처벌하지 말라고 했지만 방치했다가는 재발할 게 불 보듯 뻔했다. 강동서는 강동구 정신보건센터 상담사, 여성보호계 경찰관 등으로 구성된 가정폭력솔루션팀을 투입하기로 했다. 집을 찾아온 상담사나 경찰에게 소금을 뿌리고 소주병으로 위협하던 A씨는 차츰 마음의 문을 열었다.
2주간의 설득 끝에 솔루션팀은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겠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A씨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현재 경제상황 등도 들을 수 있었다. 최소 두 달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알코올 중독 입원치료는 한 달 만에 끝났다. A씨는 현재 통원치료만 받고 있다.
연락도 되지 않는 직장인 아들이 있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되지 못한 이들 부부의 딱한 사정도 솔루션팀이 해결했다. 팀은 부부가 아들과 같이 살고 있지 않고 경제적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내용의 사실조사서 등을 6월 성내동 주민센터에 제출했다. 이 가정은 7월부터 기초생활수급 대상으로 지정됐다. 남편은 한 달에 3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방치된 자전거를 관리하는 일로 월 20만원을 벌고 있다.
류세일 강동서 경위는 “7월부터는 홈 카운셀링 제도를 자체적으로 운영해 전담 경찰과 상담사가 지속적으로 집을 방문하고 있다”며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적절한 지원이 미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정폭력솔루션팀은 지난해 5월 서울 동대문경찰서에 처음 설치된 뒤 같은해 10월 서울 31개 전 경찰서, 올해 4월부터는 전국 경찰서로 확대됐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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