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아기 엄마보다 체력도 좋고, 운전도 더 잘해 여기저기 쏘다니며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아빠 육아의 장점. 절대진리로 믿고 철저히 따르는 신자인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역마처럼 돌아다니다 보니 아들에게 진득한 친구 하나 없다는 거다.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또래 친구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길 위의 친구들이요, 다음 회동을 기약하기 힘든 동지들이다. ‘문쎈(문화센터) 안 보내는 집은 우리 뿐’, ‘몰려 다니는 유모차들도 알고 보면 문쎈 동기’라던 아내 이야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린이집도 그렇고 문화센터도 그렇고 나는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논외’였다. ‘휴직까지 한 아빠가 하루 종일 놀아줄 텐데 문쎈은 무슨 문쎈’이라는 생각이 강했고, 세 살까지 엄마(아빠)가 키워 놓으면 뒤에 아무 탈 없이 자란다(법륜 스님), 여유가 된다면 아이 말문이 트이고 난 뒤 보내주시는 게 좋다(어린이집 교사), 문화센터는 아이들과의 놀이 소재가 빈곤한 부모들이 찾는 곳이다(육아 선배) 등등의 육아 전문가·선배들의 조언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을 표하며 확신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아빠의 이 생각은 혼자 놀고 있는 아들 모습에 흔들렸고, 근심 섞인 아내 표정에 마음 약해져 ‘뭐, 어떤 곳인지 한번 보기나 하자’며 가까운 문화센터를 찾았는데, 어쩌다 보니 음악놀이, 오감발달 맛보기 프로그램에 등록까지 해버렸다. 며칠 뒤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아들을 데리고 가자 부자(父子) 수강생은 우리가 유일했다. 이런 환경에 좀 덤덤해지긴 했지만 ‘여기서는 엄마아빠가 아기랑 같이 뭘 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에 좀 떨렸다.(소싯적에 어느 단상에 끌려나가 율동을 강요 당했을 때의 공포가 아직도 생생한 아빠다!)
빙 둘러 앉아 아기를 다리 위에 앉히곤 놀이 선생님을 따라 박수치고 몸 흔드는 프로그램이었다. 분명 아기를 위한 놀이였지만, 엄마 아빠 없이는 할 수 없었기에 어른들이 더 바빠지는 놀이였다. 연거푸 엇박자를 내고 아들이 프로그램과 따로 놀자 식은 땀이 났다. 아기들보다 더 해맑은 표정으로 아이들과 놀아주는 옆의 젊은 엄마들을 보니 내 몸은 더 뻣뻣해졌다. 들썩들썩, 시끌벅적 정신없는 와중에도 머리는 자꾸 딴 생각을 했다. ‘이걸로 애가 뭘 느끼고 배운다는 거지?' 이 정도의 놀이는 집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회의가 들었고, 급기야 ‘그래, 닥치는 대로 물고 빨고 씹어대는데, 이 구강기를 넘기고 보내자’는 결론을 냈다. 사교성, 사회성 문제를 들어 아들이 문화센터에 다니길 희망하는 엄마의 바람을 꺾을 수 없어 내린 결정이었다.
집에 돌아온 뒤 ‘오늘 문쎈 어땠어’하는 아내의 물음에 마음이 무겁다. 단순히 오늘 이야기가 궁금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질문은 ‘문쎈은 아줌마들이 시간 때우러 가는 곳, 놀거리 빈곤한 부모들의 피난처, 사교육 시발점 운운하던 당신이 직접 가보니 어떻더냐’가 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 내가 더 공부하고 문쎈 이상으로 즐겁게 같이 놀아주겠다, 프랜디(친구 같은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개운치가 않다. 아들은 무서운 속도로 자라고 있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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