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 대상 강간 범죄는 합의, 형 감경요소에서 제외해야"
피고인, 갓 성년이 됐다는 이유로 기준 벗어나 형 깎아주는 것도 문제
회사원 박모(46)씨는 지난해 4월 자신의 집에서 딸과 함께 자고 있던 딸의 친구 A(당시 13세)양을 성추행한 후 안방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 1월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 김주현)로부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고 풀려났다. 박씨는 항소심에서 A양의 법정대리인에게 5,000만원을 주고 합의했고 관련 전과가 없었다는 게 집행유예 선고 이유였다.
창원지법 전주지원 형사합의1부(부장 김경수)는 술에 취한 B양(당시 14세)을 윤간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20)씨 등 3명에게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지난 2월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들과 합의하고, 아직 소년이거나 이제 갓 성년이 된 어린 나이이며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위 두 사건 모두 형이 확정돼 풀려났다.
아동ㆍ청소년 성폭행 범죄 피고인 16% 가량이 1심에서부터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여성가족부의 용역을 받아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1심 선고를 받은 전국 아동ㆍ청소년 대상 강간 및 준강간 혐의 피고인 169명 중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피고인은 모두 27명이다. 준강간은 피해자가 잠든 경우나 술에 취해 있을 때 저지른 범죄로 죄질상 강간죄와 법정형이 동일하다.
법원 등은 아동ㆍ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집행유예 배제 등 엄정처벌을 강조했지만 공염불에 불과하다. 잔인한 아동 성범죄가 잇따르자 2012년 8월 대법원이 개최한 전국 형사법관 포럼에서 “성폭행 사건은 피해자에게 주는 고통의 정도가 크고, 금전으로 피해가 완전히 회복되기 곤란하기 때문에 합의여부에 따라 집행유예를 결정하는 것은 극히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대부분 공감했지만 강제성을 가지진 못했다. 여성가족부도 16세 미만 아동ㆍ청소년 대상 강간범죄에 대해 집행유예를 배제한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입법화하지 못했다.
여성변회는 ‘피해자와의 합의’를 형 감경 요소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진희 성폭력 피해자 전담 변호사는 “피고인은 당연히 피해변제의 책임이 있음에도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돈만 아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와 합의를 못할 경우 가중사유로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제 갓 성년이 됐다는 이유로 양형기준을 이탈해 형을 깎아준 경우도 있었다. 남자친구를 폭행으로 제압한 후 4시간에 걸쳐 피해자 C(당시 17세)양을 윤간한 혐의 등을 받은 권모(20)씨 등 3명에게 1심은 대법원 양형기준(6년)을 이탈해 징역 5년, 항소심은 징역 4년 이하의 형을 선고했다. “갓 성년이 되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신진희 변호사는 “갓 성인이 된 피고인의 경우 성폭행 전력이 있다 해도 소년범으로 형사처벌 전력이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17~18세 가량의 청소년들에 의한 성폭력 범죄가 급증하는 만큼 기계적으로 감형 요소로 적용하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변회는 지난해 6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의 개정으로 처벌이 강화된 이후 추세를 분석했으나, 개정법은 기소 시점에 적용되기 때문에 이번 통계에는 이전 법을 적용 받은 선고 결과도 포함됐다. 여성변회는 26일 오후 ‘2013년 6월 19일 성폭력관련법 개정 후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 판례 분석’포럼을 열고 양형기준 개선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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