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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심판, 전두환 노태우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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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심판, 전두환 노태우 선고

입력
2014.08.2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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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오른쪽)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나란히 법정에 섰다. 마주 잡은 두 손이 눈길을 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두환(오른쪽)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나란히 법정에 섰다. 마주 잡은 두 손이 눈길을 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6년 8월 26일 오전 서울지방법원 417호 법정.

12.12 및 5.18 선고공판이 열린 이날, 비까지 내리는 스산한 날씨였지만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서울지법 형사 30부 재판정에 쏠렸다. 외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10시 정각, 문영호 대검 중수부 수사1과장과 김상희 주임검사 등 수사검사들이 이례적으로 총출동한 가운데 재판의 주인공들이 법정에 들어섰다. 푸른색 죄수복장에 수인번호 3124와 1042가 가슴에 선명한 피고들은 다름아닌 전두환과 노태우,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었다.

재판장에 선 두 사람은 신원확인에 앞서 짧은 시간 서로 손을 마주잡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79년, 12.12 군사쿠데타 이래 권력의 중심에서 대통령직까지 이어받았던 두 사람이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결국 역사의 심판대에 섰다.

두 시간여 여의 판결설명문 낭독을 마친 김영일 재판장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피고 전두환은 반란수괴로서 군 병력을 동원해 헌정사를 크게 주름지게 한 행위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전혀 없다. 피고 노태우는 반란의 2인자인데다가 직접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북방외교에 공헌한 사실이 인정된다” 전두환은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고 노태우는 커다란 양쪽 귀가 일순 달아올랐다. 선고가 이어졌다. “피고 전두환 사형, 추징금 2259억 5천만 원. 피고 노태우 징역 22년 6월, 추징금 2838억 9600만원”

12.12와 5.18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17년 만에야 이뤄졌다.

1995년 10월 민주당 박계동의원의 폭로로 비롯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은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며 5.18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스스로 뒤집은 검찰은 속전속결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구속했고 이날 1심 재판에서 중형이 선고된 것이다.

하지만 이 판결이 그대로 집행되리라고 믿는 국민은 없었다. 대법원은 이듬해 4월 ‘전두환 사형, 노태우 징역 12년’의 판결을 확정 지었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97년 12월 ‘국민대화합’을 명분으로 이들을 모두 특별 사면했다.

그로부터 또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말 많던 추징금도 종착점이 보이고 둘의 나이도 80중반에 이르렀다. 최근, 와병 중인 노 전 대통령 집으로 전 전대통령이 10년 만에 병문안을 갔다고 한다.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데 서로 역사에 순응하는 겸손의 눈빛을 나눴을지 모를 일이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사진으로 보는 이 주일의 小史’가 지면개편과 함께 151회로 끝을 맺습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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